김관택(1909~1974)

金觀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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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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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룡 신부.


전교 회장 · 총회장 · 교육자 · 민족 운동가. 세례명은 요셉. 본관은 전주(全州). 김석원(金錫元)과 이내순(李 廼順, 마리아)의 아들로 평남 강서군 성태면 연 곡리(江西郡 星台面 硯 谷里)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평양의 광성고 보(光成高普)를 수료하 고, 1932년 성태면 마 산의 효성학교(曉星學 校) 교원으로 임용되었 다. 1937년 교직을 사 임하고 평양교구에서 설립한 '가톨릭조선사' 에 입사하였다. 일제의 조선 교육 정책이 중일 전쟁을 전후하여 '반도 인의 황민화(皇民化) 운동' 이란 이름 아래 철 저한 식민주의 교육 방 침으로 심화되었기 때 문이었다. 《가톨릭 조 선》의 보급 확장에 힘쓰 던 중 1938년 재정난으 로 폐간되자 평양교구 의 전교사로 임명되어 평안도 각지를 순회하 며 전교하였다. 1943년 평남 정주(定州) 본당 의 해성(海星)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어 교육 사업에 헌신 하는 한편, 본당 신부가 공석 중이던 정주 본당의 전교사 겸 총회장직도 맡아 여러 지역에 전교하였다. 이때부터 민족주의자들과 관계를 맺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자주 불려가 심문을 당하 였다. 1944년 평양교구에서 활동 중이던 메리놀 외방전 교회 신부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감금당하기도 하 였다. 해방이 되자 건국 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을 역임 하였고, 1946년 조선 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면 서 반탁(反託) 운동을 전개하다 북한 공산당이 체포령을 내리자 이듬해 탈출, 월남하였다. 이후 가톨릭 구제위원 회(Catholic ReliefService)의 한국 지배인으로 사회 사업을 시작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면담하고 구호가 필요한 곳을 현지 답사하였다. 한편 1949년 11 월에는 '평양교구 신우회' (平壤敎區信友會) 회장으로 선임되어 1955년 12월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회관을 마 련한 후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 후원 사업 및 성소 계발, 기금 조성 등 신우회 발전에 공헌하였다. 1960년 7월에 는 서강대학교 후원회의 부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67 년 1월 종로 본당의 초대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1968년 과 1969년에 걸쳐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에 교회 묘지를 마련하였으며, 1974년 8월 22일 선종하였다. 서울대교 구의 김몽은(金蒙恩, 요한) 신부는 그의 장남이다. (→ 마산 본당, 평양교구 ; 정주 본당 ; 평양교구 신우회) ※ 참고문헌  平壤教區史編纂委員會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 도출판사, 1981/《교회와 역사》 189호(1991. 2).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