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동 (?~1802)
金貴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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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전라도 고산(高山) 출신으로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살았다. 그 후 천주교 를 자유롭게 신봉하기 위해 1801년 2월 초(음) 배론(舟 論, 현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 산중으로 들어가 옹기점 을 운영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2월 그믐, 황사영(黃嗣永, 알렉산델)이 신유박해를 피해 김한빈(金 漢彬, 베드로), 황심(黃沁, 토마스) 등과 함께 그곳으로 오자 자신의 옹기점에 굴을 파고 피신처를 마련해 주었 다. 황사영은 바로 이 굴에서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백 서〉(帛書)를 작성하였다. 그 후 <백서>가 발각되고 황사 영이 체포됨으로써 김귀동의 거처가 알려져 포청으로 압 송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나 배교 하지 않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홍주로 이송되어 1802년 2월 2일(음 1801년 12월 30일)에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배론 ; 황사영)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邪學懲義》 《순조실록》.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