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1922~ )

金南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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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수원교구장. 주교. 세례명은 안젤로. 1922년 만주 간도성 연길현 다조구 대령동(間島省 延吉縣 茶條溝 大領洞)에서 출생. 14세 때 수원에 살던 형을 찾아가 그곳에서 수원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덕원(德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10월 17일 연길교구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옥에 갇혀 있던 연길교구장 브레허(Breher, 白化東) 주교의 명에 따라 로마 유학을 위해 월남한 후, 혜화동 본당의 보좌 신부로 활동하였다. 1949년 로마 성 우르바노 대학에 유학, 1952년 6월 27 일 <불교의 근본 교리>란 논문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취 득하였고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1953년 귀국 후 왜관 순심중고등학교, 경북대, 효성여 대에서 종교 · 철학 독일어를 강의하였고, 1955년 4월 순심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부산 양정동 본당 주임 신부(1957. 12. 7~1961. 6. 15), 대양중공업고등 학교 교장(1960. 5. 14~1967. 2. 28), 서면 본당 주임 신부 (1960. 12. 11~1966. 12. 3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 장(1966. 6. 1~1973. 10. 15), 가톨릭대학 교의신학 교수 및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1973) 등을 역임 하였다. 김 신부가 제2대 수원교구장으로 임명된 것은 1974년 10월 5일이었다. 이어 11월 21일 고등동 성당에서 주교 착좌식을 갖고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를 사목 모토 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 구현에 노력하였다. 또한 1983년 12월 수원 가톨릭대학을 설립 인가받아 교구 신 학생 양성 사업에 주력하였고, 전교에 큰 비중을 두고 사 목 활동을 전개하여 1974년 31개 본당 67,000여 명이 었던 것이 1993년에는 74개 본당에 신자 32만 2,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 업위원회 위원장(1980-1984)으로서 시성 시복 추진 운 동 · 교회사 자료 정리 · 200주년 성서 번역 · 통일 성가 집 발간 · 맹인 개안 무료 수술 · 북한 선교 사업 등 6개 분야에 걸친 기념 사업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주교 회의 부의장(1975~1981), , 총무(1981~1987), , 의장(1987~1993), 전례 위원장(1975~1990), 성서 위원장(1975~1990), 교리 위원장(1981~1984), 사목 위원장(1984~1990) , 평신도 담 당(1984~1990), 선교 위원장(1984~현재), 시성 시복 추진 책임 주교(1976~1984), 군종 신부단 총재(1977~1984), 한 국 외방선교회 제3대 총재(1979~현재) 등을 겸임해 오고 있다. (→ 수원교구)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