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권(?~1839)

金大權

글자 크기
2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화준〔金若古排, 야고보〕의 형. 충청도 청양의 수단이 (현 충남 청양군 사양면 新旺里의 水丹)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이미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나 수계하지 않다가 양친 이 사망한 뒤부터 신자의 본분을 지키는 한편, 보령의 청 라동(현 충남 보령군 青羅面)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공주의 한 옹기점으로 이주해 살았는데, 처음에는 부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부인을 권면하여 교리를 깨닫게 한 뒤부터 함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고, 집안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교리를 전하였다. 이후 전라 도 고산(高山)으로 이주해 살던 중 1827년에 이르러 정 해박해(丁亥迫害)가 시작되자 다른 교우들에게는 피신 하라고 일러주었으나 자신은 집에 남아 있다가 체포되어 고산 관아로 압송되었다. 고산에서 일차로 신문을 받은 그는 즉시 전주로 압송 되어 여러 차례의 신문과 혹독한 형벌을 당했지만, 그때 마다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전라도 감사의 갖가지 회유 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유배형을 받는 가운데서도 포졸들에게 교리를 설명 하면서 굳센 신심을 나타냈다. 그리고 신태보(申太甫, 베드로), 이태권(李太權, 베드로), 이일언(李日彥, 욥), 정태봉(鄭太奉, 바오로) 등과 함께 약 12년 동안 전주의 옥에 갇혀 있다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난 뒤 조정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5일 만인 5월 29일 (음 4월 17일) 전주 장터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김화준 ; 신태보 ; 정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國《承政院日記)《日省錄》.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