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제 (1927~1991)

金德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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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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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제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치릴로. 1927년 3월 18일 만주 안동성(安東省) 안동시 채시가 13번지에서 김문규 (金文奎, 바오로)와 윤정혜(尹靜惠, 아네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문규는 국내에서의 독립 운동이 어려워 만 주로 이주, 만주의 영국 조계(租界) 내에 거주하며 국내 의 독립 지사들과 뜻을 합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의주(義州) 성당으로 가던 도중 교통 사 고를 당했는데, 사고를 처리하던 일경(日警)이 김문규의 몸에서 독립 운동 관계 문서들과 태극기를 발견함으로써 2년 동안 투옥되었다. 김덕제는 신의주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1952년 12월 성신대학(聖神大學, 현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후 이 듬해 4월 육군 제7기 3급 8호의 문관(文官) 신분으로 입 대하여 군인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해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1957년 3월 10일 육군 문관으로 제 대한 후 서울 도림동 본당 보좌신부(1957. 3), 당산동 본 당 주임 신부(1957. 5. 22), 제기동 본당 보좌 신부(1957.7), 제기동 본당 주임 신부(1957.9)로 사목하였다. 이어 1963년 1월 11일 평택 서정리(西井里) 본당 주임 신부 로 임명되어(1963. 1. 11) 오산 본당을 분할하고(1964. 7.2), 효명중고등학교(曉明中高等學校) 지도 신부로 종교 강의를 하였다(1968. 11). 이후 가톨릭대학 영성 지도 신 부(1969. 12), 가톨릭대학 사감(1971.7), 서울대교구 성소 위원회 위원(1971.9), 서울대교구 인사 분과위원회 위원 (1972. 4)을 역임한 후 상도동 본당의 주임 신부로 임명되 어(1972.8.5) 성당 확장을 위해 대지를 매입하고, 운영이 부실하던 신용 협동 조합을 해산하였다. 교세가 날로 증 가함에 따라 1976년 5월 23일 성당 증축 기공식을 하였 는데 6월 10일자로 브라질 파견 발령을 받았다. 해외 파견 사목을 위하여 대기 하던 중 논현동 본당의 주임 신부로 임명되어(1977. 3. 3) 성 전 건립 공사를 마무리하고, '사랑의 구름다리'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교세 확대 및 청소년 교육과 평신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어 이문동 본당 주임 신부(1982. 8. 26)를 거쳐 수 유동 본당에 부임하 (1985. 3.6) 화재로 소실 된 성전을 재건축하고,무의탁 할머니들을 위한 '사랑의 집' 을 개설 하였으며, 농아들을 위한 주일 미사를 신설하였다. 1991년 9월 14 일 췌장암으로 선종하였다. (→ 논현동 본당 ; 상도동 본당 ; 서정리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09호(1992. 1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