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1915~1950)

金東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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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신부.

김동철 신부.


덕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르코. 1915년 김성준(요 셉)과 박부경(벨다)의 아들로 태어나 1943년 3월 6일 사제로 서품되 었다. 1944년 11월 평 안남도 안주(安州) 본 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4월 9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 원을 개설하게 하였고, 해방 후 본당에서 '우 리 말 공부 교실' 을 시 작하여 좋은 결실을 거 두었다. 1946년 10월 평안북도 비현(枇峴)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당시 비현 본당에서는 성심학교(聖心學校)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비현면 위원회로부터 성심학교를 신설 중학교 의 교사(校舍)로 빌려 달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를 거절 한 것이 화근이 되어 김동철 신부는 비현면 보안서와 군 · 도 교육과로부터 온갖 협박을 받았다. 그러는 가운 데 공산당의 유산 계급 재산 몰수와 사회 인사 숙청으로 후원자들이 줄어들면서 학교 운영은 심각한 재정난에 부 딪혔다. 이에 교사 2명을 감원하고 수업과 학생 지도를 직접 담당하였는데 감원된 교사 중 1명이 불만을 품고 고발하자 이것을 이유로 공산당이 김동철 신부를 체포· 감금하였다. 평양교구의 부감목 김필현(金泌現, 루도비 코) 신부가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소련군 사령부에 진정 하여 풀려날 수 있었는데 공산당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더 이상 학교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평양교구장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의 허락 아래 학교를 폐쇄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1년 후 성심학교 건물은 강제 몰수당하였다. 한편 1948년 8월 27일에는 영원한 도움 의 성모 수녀회 비현 분원을 다시 시작하게 하였고, 자신 은 양봉을 시작하였다. 공산당의 감시 속에서도 1950년 의 부활절을 무사히 보냈으나, 그 해 6월 27일 밤 평양 교구 신부로서는 마지막으로 연행되어 갔고 이후 행방 불명되었다. 부산교구 김동언(金東彥, 베드로) 신부는 그의 형이다. (-> 비현 본당 ; 안주 본당) ※ 참고문헌  《경향잡지》 제863호(1937. 10)/ 平壤教區史編纂委 員會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