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건 (1793?~1839)

金思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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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을해박해(乙亥迫害) 때 원주 감옥에서 옥사한 김강이(金 綱伊, 시몬)의 조카. 충청도 서산의 부유한 중인 집안 출 신으로 부친 김창귀(金昌貴, 타대오)와 백부를 따라 전 라도 고산(高山), 경상도 진보(珍寶) '머루산' (현 영양군 石浦面 葡山洞), 울진(蔚珍) 등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집안 하인으로 있던 자의 밀고로 1815년(을해년) 4월 부 친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되 었다. 이때 부친과 백부는 안동 진영에 수감되었다가 5 월에 원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여기에서 부친은 배 교하여 전라도 보성(寶城)으로 유배되었지만, 백부는 형 벌에 굴하지 않음으로써 사형 선고를 받고 옥에 갇혀 있 던 중 형벌로 인한 상처와 이질로 11월 5일에 옥사하였 다. 이후 그는 순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며 가족과 함 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827년 정해박해 (丁亥迫害)가 발생하자 순교를 결심하고 있다가 체포되 어 상주(尙州)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모진 형벌을 당하 는 가운데서도 교리를 설명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켰으 며, 대구와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문초를 당한 뒤 다시 상주 진영으로 옮겨져 투옥되었다. 이렇게 12년이 지난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각처에서 순교자가 탄생할 무렵 조정에서는 지방 관아에 투옥되어 있던 신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이에 따라 그는 이틀 후인 5월 28 일(음 4월 14일) 상주 진영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 다. (→ 김강이 ; 정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承政院 日 記》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