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집 (1744 ?~1802)
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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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 코. 충청도 덕산 비방고지〔菲芳串, 현 충남 예산군 新岩面 下坪里〕의 양가(良家)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던 중 천주교 신앙을 안 뒤부터는 기도와 독서로 생활하였다. 또 부모 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많은 희사를 하였으며, 교리를 실천함으로써 신앙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지한 사람 들을 교화하고, 기도 생활 중에 천주교 서적을 필사하여 교우들에게 무료로 제공하였다. 그러다가 1801년 신유 박해 때 자신이 필사해 배포한 교회 서적이 단서가 되어 체포되었는데, 먼저 덕산 관아에서 문초를 받았다. 이때 덕산 현감은 그에게 배교를 강요하였으나 듣지 않자 오 랫동안 형벌을 가한 뒤 10월에 해미(海美) 진영으로 압 송토록 하였다. 이곳에서 여러 차례 형벌을 받은 그는 12월에 청주 병영으로 압송되어 잔혹한 형벌을 받으면 서도 신앙을 굳게 지켰다. 그런 다음 사형 선고를 받고 1802년 1월 25일(음 1801년 12월 22일) 장터로 끌려나 가 곤장을 맞고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