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1898~1966?)

金善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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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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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본관은 경주(慶州). 병오박해 때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김준원(金俊遠, 아니 체도)의 손자. 1898년(광무 2) 8월 15일 경기도 시흥군 의왕면 청계리 206번지에서 김석오(金錫午, 세자 요한) 와 이치도(李致道, 마리아)의 5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 다. 7~8세부터 하우현(下牛峴) 본당 르 각(Le Gac, 郭 元良) 신부의 복사를 하였고, 1909년 용산 예수성심신 학교에 입학, 1923년 5월 2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후 인천(현 답동) 본당 보 좌 신부(1923)를 거쳐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 商業學校 乙組) 라틴어 교수(1924), , 황해도 장연 본당 보좌 신부(1930) 등을 역임하였다. 1935 년 만주 길림교구(吉林 敎區)로 사목지를 옮겨 주교좌 신경(新京, 長 春) 본당에서 전교했다. 당시 길림교구에는 약 1,200명의 한국인 신자 들이 있었는데 한국인을 위한 성당이 없었으므로 주일이면 신경 성당에서 한국인 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어학에 특별한 재질이 있어 신경에 부임한 지 얼마 안되어 중국어를 통달하였다. 길 림교구의 프랑스인 주교의 비서로 교구청의 문서 번역과 통역을 맡아보았으며, 중국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담당하 였고 신경 본당의 주임 신부로도 활약하였다. 1945년 9 월 길림교구장의 명으로 중국인 신부가 공석 중인 하얼 빈(哈爾賓)에 임시로 파견되었다가, 1949년 중국 본토 가 공산화된 후 '애국 교회' (愛國敎會) 참여 거부로 중 공 당국에 체포되어 15년 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1966년 옥사한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74호(1981. 1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