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박 (1761~1828)
金世博
글자 크기
2권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암브로시 오. 관명은 언우. 일명 군미.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희생 자인 김범우(金範禹, 토마)의 친척으로 서울의 역관 집 안에서 태어나 교회 창설 직후에 입교하였다. 입교한 뒤 아내와 자식들이 천주교를 배척하여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1791년 이후 가족들을 떠나 지방의 교우들을 찾아다니면서 교회 서적을 필사하여 팔며 생계 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1794년 말 주문모(周文謨, 야 고보) 신부가 입국한 뒤로는 그를 만나 성사를 받고, 가 는 곳마다 외교인들, 특히 어린이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 치고, 아름다운 덕행과 부지런한 기도, 극기와 청빈한 생 활로 교우들의 모범이 되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 迫害)와 1815년의 을해박해(乙亥迫害)를 모면했지만,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 자신이 머물고 있던 안동에 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자 그 해 5월(음) 안동 진영에 자수, 한 달 동안 잔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끝내 자 신의 행적과 책을 감추어 둔 곳을 말하지 않으므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대구 감영에서도 배교를 강요하는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신앙을 지킨 뒤, 박보록(朴保祿, 바오로) · 사의(士儀, 안드레아) 부자, 이재행(李在行, 안드레아)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임금의 윤허를 기다리 던 중 1828년 12월 3일(음 10월 27일) 대구 감영에서 옥 사하였다. (-> 정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李晚采 편, 《闢衛編》.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