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 (1928~1986)
金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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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조각가. 세례명 프란치스코. 경기도 안성 출생. 1947 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학년 재학 중 제1회 국전(國 展)에 '청년상' (青年 像)을 출품하여 특선의 영예를 차지하면서 미 술계 에 입 문 하 였 다 . 1950년 서울대학교 미 술대학과 1952년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30 여 년 동안 모교에 재직 하면서 수많은 조각가 를 배출하고 1천여 점 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 을 창작하였다. 뿐만 아 니라 그는 미술 행정가 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한국 미술계의 외교관' 혹은 '모든 미술인의 대부(代父)' 로 불릴 만큼 눈부신 활동을 펼친 전후 첫 세 대의 미술인이었다. 동시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1972 ~1977) 및 대한 민국 미협 운영(1972~1977, 이사장 그 후 고문 역임)과 정부의 문화 행정(서울시 자문 위원, 국회 고문 역임)에 참여하였으며, 1983년 국립 현대미술관 관장으 로 취임하여 국제적 성격과 규모를 갖춘 미술관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여 가톨릭 미술가협회 회장으로 서 국내 최초로 국제 종교 미술전을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 성향은 애국적 기념 조각과 종교적 소재의 작품으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우선 1965년부터 10년 동안은 국가 민족적 차원에서 사적(史的) · 민족적 사실 성을 중요시한 일련의 기념 조각을 창작함으로써 현대 환경 조각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작품으로 는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장충 공원의 유관순 상, 여 주의 세종대왕 상, 국립 극장 분수 조각, 국회 내의 애국 애족의 군상 및 평화와 번영의 상, 3 · 1 운동 기념 부조, 아웅산 순국 외교 사절 위령탑, UN탑, 한강 치수비, 어 린이 대공원 내외의 여러 작품 등이 있다. 다음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 미술인으로서 그의 창작 세계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메시지의 상징 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1954년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신앙의 대부(代父)였던 장발(張勃) 선생을 중심으로 열 린 한국 최초의 그리스도교 미술전인 성미전(聖美展)에 <성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를 출품한 이후 30여 년 동안 수많은 성상(聖像)과 종교적 소재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십자가(절두산, 청파동, 라자로 마을 등), 예수 성심상(성심여고, 서강대, 명수대 본당), 성모 마리아 상(계성여고) , 성 베네딕도상과 4 복음 사가 부조(혜화동), 김대건 신부상(불광동, 마닐라) 등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작품 형식 속에 복음적 메시지를 무리 없이 수용하여 독창적인 언어를 창출해 냄으로써 조각 부문에 있어서 토착화된 한국 그리스도교 미술의 효시가 되었 다. 엄격하고 육중하면서도 유려하고 활기찬 그의 작품 은 '장엄함과 섬세함' 으로 표출되며, 절제된 표현으로 단순 소박하여 무한한 친근감으로 다가옴으로써 오히려 초월적인 종교성에 이르고 있다. 명실 공히 그는 현대 한국 미술계의 선구자였다. 그러 므로 그가 생전에 우리 교회와 사회에 남긴 업적을 기리 기 위해 그의 사후 미망인인 김남조(金南祚, 막달레나) 시인을 이사장으로 1987년 '재단 법인 김세중 기념사업 회' 가 결성되었고, 그 첫 사업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조 각 상(賞)이 되는 '김세중 조각상' 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趙光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