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성(?~1862)
金順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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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배교자요 밀고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여상.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정 하상(丁夏祥, 바오로),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유진길 (劉進吉, 아우구스티노),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등 지 도급 교우들을 밀고하였고,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의 복사인 정화경(안드레아)을 속여 포졸들을 주교의 거 처로 인도하였다. 또 그 해 7월(음) 이후에는 김대건(金 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부친인 김제준(金濟俊, 이냐시 오) 등 여러 교우들을 밀고하였다. 그러면서도 교우들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참석하여 교리 문답과 성서를 읽으 며 모범을 보이는 체하면서 선교사들과 교우들의 동정을 염탐하였고, 자신의 밀고에 의해 체포된 처녀 교우들을 농락하려고 하였다. 그는 앵베르 주교 체포의 공로로 하 위직인 오위장(五衛將)의 관직을 얻었으나, 1840년 홍 원모(洪元謨)와 함께 다시 신자들을 괴롭히려고 모의하 던 중 죄인으로 몰려 전라남도 강진의 신지도(薪智島)로 유배되었다. 그 후 1853년 특사로 유배에서 풀려났다가 1862년 이재두(李載斗) 등과 공모하여 중종의 후손인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하전(李夏銓)을 왕으로 추 대하려다 실패, 이해 8월 21일(음 7월 26일) 대역 부도 죄인(大逆不道罪人)으로 참수되었다.(→ 기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中 下/《기해일기》/《承政院日記》/ 《日 省錄》.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