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1874~1945)
金承淵
글자 크기
2권
신부. 세례명 아우구 스티노. 본관은 경주. 1868년 8월 14일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한 김 종륜(金宗倫, 루가)의 후손. 1874년 2월 28 일 경북 영천 용평(龍 坪)에서 태어난 김승연 은, 일찍이 성소를 받고 어린 나이인 1884년 페 낭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 1892년 7월 12일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계속, 이듬해 5월 1일 삭발례 를 받았다. 그러나 신학교 당국은 페낭 유학에서 귀국한 학생들 중 건강이 쇠약하거나, 어려서 한국을 떠나 살아 한국인의 관습에 익숙하지 못할 것이 염려되는 학생들을 18개월에서 2년씩 본당에 파견키로 하였다. 따라서 김 승연은 대구 본당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에게 가서 지도를 받으며 지내다가 복귀하여 수문품 · 차부제품 · 부제품을 차례로 받은 뒤 1900년 9월 22일 사제로 서품 되었다. 서품된 후 그는 신학교 교사로 남아 있다가 1901년 2 월 24일, 전남 무안군 박곡면 사내 우적동(牛跡洞, 현 전 남 무안군 몽탄면)에서 사목하다 사망한 이내수(아우구스 티노)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903년 5월 정읍 신성리(新城里)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켜 초대 주 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김 신부는 본래 사내와 우적동에 거주하였으나 담당 공소의 대부분이 정읍과 장성 지방에 있으므로 신성리에 본당을 세우는 것이 공소 방문에 편 리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1907년 5월 그는 다시 공소에 서 본당으로 승격된 자신의 출신지 영천 용평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전임되었으나, 사제관이 없어 임시 거처를 회장 집으로 정하고 즉시 성당과 사제관 신축 공사를 착 수하여 1912년 1월 6일 축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1915 년 6월 제주도로 전임되었다가 섬의 풍토가 맞지 않아 피부병으로 시달린 끝에 1916년 5월 27일 전주 본당 주 임으로 전임되었다. 1918년 1월 15일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경리 담당 겸 라틴어 교수로 전임되고, 1929 년 5월 25일에는 김천 본당(金泉本堂) 주임으로 부임하 여 본당 소속인 성의중학교 제4대 교장을 겸직하였다. 1934년 5월에는 성의학원을, 이듬해에는 김천 성당을 준공하고 1936년 5월 21일 축성식을 가졌다. 1943년 2 월 25일 노환으로 김천 본당을 떠나 대구교구청에서 요 양하던 중 1945년 2월 26일, 72세를 일기로 선종하였 다. 〔金眞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