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선 金良善(1907~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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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선.

김양선.


장로교 목사요 교회 사가. 호는 매산(梅山). 1876년 만주에서 한국 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된 백홍준(白鴻俊)의 외손. 평북 의주군 피현 면 당후동(堂後洞)에서 김관근(金灌根) 목사와 백관성의 4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나 중원학교(重遠學校)와 선천(宣川)의 신성중학교(信聖中學 校)를 졸업한 뒤 평양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學校)에서 교회사를 공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집안에 소장되어 오던 초기 프로테스탄트 서적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예수 셩교 젼셔》, <찬양가>, <그리스도 신문> 등 귀중본 들을 소장하였고, 그 후에는 한국의 고고학이나 천주교 관련 서적들을 입수하는 데도 노력하여 해방 이전까지 5 천 종이 넘는 유물과 서적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뿐만 아 니라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청주회' 라는 비밀 결사대 를 조직하여 학생들의 시위 활동을 주도하였다가 투옥된 이래 여러 차례 옥고를 치러야만 했는데, 이때에도 귀중 사료는 물론 안중근(安重根, 토마)의 옥중 유묵, 태극기 등을 비밀리에 보관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다. 해방이 되자 그는 함태영(咸台永) 목사, 백낙준(白樂 濬) 박사, 천주교의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 등과 협력하여 남산에 박물관을 설립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38선 이북에 있던 유물과 서적 들을 옮겨 오는 데 많은 애로가 있었고, 그 와중에서 아 내 한필례(韓弼禮)가 공산군에게 희생되기도 하였다. 1948년 4월 20일 남산에서 개관한 '한국 기독교 박물 관' 과 '매산 고고관' 은 6 · 25 동란으로 소실되었으며, 소장 유물들은 한때 일본과 미국으로 옮겨졌다가 1967 년 10월 10일 숭실대학교에 기증되어 현재 대학 구내에 있는 '기독교 박물관' 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그는 사망 하기까지 여러 프로테스탄트 계통의 신학 대학과 숭실대 학, 연세대, 홍익대 등에서 한국사 · 고고학 · 미술사 등 을 강의하였으며, 1966년에는 백낙준 박사 등과 '한국 교회사학회' 를, 이듬해에는 '한국 기독교 문화 연구소' 를 설립하였고, '한국 고고학 협회' 부회장, '한국 대학 박물관 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교 회사 연구에 노력하여 《한국 기독교 전래사》(韓國基督敎 傳來史, 장로회 신학교, 1947), 《한국 기독교사 연구》(韓國 基督教史研究, 기독교문사, 1971) 등 여러 편의 저서와 수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중에는 한국 천주교회사 와 관련된 논문들도 있다. 현재 기독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소장품은 모두 3,660점에 달하며, 그 내용은 고고학 유물, 유묵, 회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중에 중국 천주교회의 개척자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가 제작한 <양의현람도>(兩儀玄覽圖)는 세 계 유일본이며, 소위 통일 신라 때의 경교 석재 십자가 (景教石材十字架) 당나라 때의 경교 성서(景敎聖書) , 금강산 경교비 탁본(金剛山景敎碑拓本) , 1882년에 번역 된 로스(J. Ross, 羅約翰)의 《누가 복음》, 《예수 성교 전 셔》 등도 중요한 사료로 손꼽힌다. 또 소장품 가운데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자인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저작이라 알려져 있는 《만천유고》(蔓川遺稿)를 비롯하 여, 《성교요지》(聖敎要旨) 한글 필사본, 《이벽 선생 몽회 록》, 《류한당 언행실록》 등 천주교회사와 관련된 자료들 이 있다. ※ 참고문헌  《梅山金良善教授 華甲紀念 史學論叢》, 史學研究 제 20집, 1968/ 김광수, 《한국 기독교 인물사》, 기독교문사, 1974/ 崇田大 學校 八十年史 編纂委員會 편, 《崇田大學校 80년사》, 197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