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구 (1902~1984)
金榮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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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구 신부.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02년 2월 4일 전 북 수류(水流)에서 출생하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 하고, 1929년 5월 25일 휴양 중인 드망즈(Demange, 安 世華) 주교를 대신하여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화산(華山) 본당 보좌 신부 (1929. 5), 군산 본당 주임 신부(1931. 1. 19)를 거쳐 전주 교구의 경리 및 교구장 비서 겸 전주 본당 주임 신부 (1937. 4)의 직책을 맡아 해성(海星)학교 교사를 증축하 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를 초청하여 해성학 교를 운영하였다. 이어 남원 본당 주임 신부(1938. 6. 12), '전주교구 천주교회 유지 재단' 이사(1938. 6. 22), 이리 본당 주임 신부(1941. 5. 4), 전주교구 재정 감리(겸임, 1942 봄), 화산 본당 주임 신부(1947. 4. 14), 전주교구 경 리 담당 신부(1948. 11. 21), 성심(聖心)여자중학교 초대 교장(겸임, 1948. 9. 16) 을 역임하였다. 1950년 8월 2일 공 산군에 의해 전주 형무 소에 구금되었다가 9월 27일 구출되었다. 이듬 해 5월 6일 삼례 본당 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 되어 가톨릭 구제회의 도움으로 김제군 용지면 용수리에 가옥 50동 을 신축하고, 1954년 12월 나환자 200여 명 을 수용하는 '상지원'을 설립하였다. 이어 1955년 8월 10일 120평 규모의 삼례 성당을 준공 · 낙 성하였다.1958년 안대동 본당으로 전임되어 본당 신설 차 토지를 매입하여 고산 본당을 신축하고, 안대동에서 함열(咸悅)로 본당을 이전(1959. 1. 10), 건평 165평의 함 열 성당을 낙성하였다(1959. 10. 29). 정읍 본당(1961. 7.2) 순창 본당(1961. 12. 5), 전주교구 상서국장(1961. 12.27)을 거쳐 부안 본당의 주임 신부로 전임되어(1963. 7.11) 그 해 8월 27일 130평 건평의 부안 성당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전주교구 제4 지구장(1966. 11. 14), 성 직자 정양 규정 (聖職者靜養規程) 운영 위원(1967.2.27), 전주교구 사목협의회 사회 활동 위원장(1968. 5. 18), 전 주교구 평의원(1969. 10)으로도 활약하였다. 그 후 이리 (현 창인동) 본당(1969. 12. 31), 남원 본당(1970. 7. 23), 중 동 본당(1971.4. 16)의 주임 신부로 활동한 후 1971년 7 월 14일 본당 일선 사목에서 은퇴하였다. 1979년 5월 25일 사제 서품 금경축을 맞았고, 1984년 7월 12일 노 환으로 선종하였다. (-> 부안 본당 ; 함열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24호(1994. 1). [尹善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