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 (1894~1971)

金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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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청 앞에서 소신학생들과 함께한 김영구 신부(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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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청 앞에서 소신학생들과 함께한 김영구 신부(왼쪽)


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본관은 광산(光山). 1894년 6월 10일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은이 마 을에서 김낙현(金洛鉉)과 밀양 박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다.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5월 20 일 사제로 서품되어 갓등이(현 왕림) 본당 보좌 신부로 사 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어 1925년 6월 진위(振威) 본 당(1927년 폐지) 주임 신부를 거쳐 용문 본당 신부(1927. 7. 8)를 역임한 후, 갓등 이 본당 신부로 전임되 었다(1936. 5. 19). 일제 관헌들에게는 배일 사 상을 가진 완고한 성직 자, 민족주의자로 지목 되어 교장으로 있던 왕 림학교는 시설 미달이 라는 이유로 폐교당하 였지만(1937), 1년 후 비정규 초등 교육 기관 인 왕림 강습회를 인가 받아 지역 청소년들의 교육에 기여하였다.또한 1946년 1월 15일에 는 정규 초등 교육 기관인 광성(光星)국민학교(1981년 2 월 28일 폐교)를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48년 9월 충북 옥천 본당으로 전임되어 보은에 성 당을 설립하였고, 그 후 건강 악화로 서울 주교관에 머무 르다가 1955년 1월, 해방동(현 해방촌)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발령받아 44평 규모의 목조 성당을 건립 · 축성 (1956.6)하는 등 성당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잠실 성심원(聖心園)에서 휴양(1957. 7)한 후 이듬해 4월 용문 본당 신부로 임명되어 양평군 여울리 공소 강당 부지 238평을 매입하고 24평 규모의 강당을 신축하였다(1961. 11). 1964년 6월 17일 사목 일선에서 은퇴, 하우현 본당에 머무르면서 1965년 미군 부대로부 터 건축 자재를 지원받아 현재의 하우현 성당을 신축하 였다. 1971년 7월 14일 숙환으로 선종하였다. (-> 왕림 본당 ; 하우현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66호(1981.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