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렬 (?~1931)

金英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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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

김영렬.


간도 지방 최초의 천주교 신자. 세례명은 요한. 함경북 도 온성(穩城) 출신.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 향시에 합 격했으나 회의를 느끼고 오직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다가 1800년대 후반에 집안을 따라 간도(間島)의 호천개〔湖 泉浦〕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1892년 이곳으로 이주해 온 김이기(金以器)를 스승으로 모신 뒤부터 동학을 공부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봄에는 그와 함께 서학대(棲 鶴臺, 일명 알미대)로 이주했다. 김이기는 처음 동학에 심 취했다가 늦게서야 천주교를 알게 되었는데, 1894년 겨 울 무렵에는 이를 진교(眞敎)로 여기고 제자들에게 설명 해 주었다. 김영렬이 천주교에 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었다. 그러나 교리를 자세히 알기도 전인 1895년 3월 25일(음), 스승 김이기는 동학도로 체포되어 회령(會寧)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이에 그는 스승이 말하던 천주교 교리를 자세히 배우기로 작정하고 상경하던 도중, 원산 에서 한 신자의 소개로 원산 본당의 베르모렐(Joseph Vermorel, 張若瑟)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베르모렐 신부를 찾아간 김영렬은 천주교 교리에 대해 토론한 끝에 곧 교리를 공부하게 되었고, 1896 년 5월 16일(성심 강림 첨례 전날)에 영세와 견 진성사를 함께 받았다. 이후 그는 호천개로 돌 아가 친척과 동료들에게 교리를 전하는 한편, 원산 근처의 눈다리(일 명 누운달)에 임시 거처 를 마련하고 예비자들을 이곳에 머물도록 하 였다. 이때 그의 가르침 을 따라 가장 먼저 입교한 사람은 최규녀(崔規汝, 그레 고리오)와 유패룡(劉覇龍, 라우렌시오)이었다. 그리고 계속 예비자들이 탄생하여 1897년에는 원산 본당의 제6 대 주임 브레(Bret, 白類斯) 신부로부터 모두 12명이 영 세와 동시에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으니, 브레 신부는 이 들에게 "북관(北關)의 12종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김영렬은 이들 중 박연삼(朴連三, 루가), 김성준(金成俊, 안토니오), 조여천(趙汝天, 마르티노), 최문화(崔文化, 베네딕도) 지유현(池有鉉, 타대오) 등과 함께 간도로 돌 아가 교우촌을 세우는 등 전교에 힘쓰다가 연길현 남서 구(南西溝)에서 1931년 1월 12일(음 1930년 11월 24일) 에 사망하였다. (→ 간도 교회 ; 김이기) ※ 참고문헌  韓興烈, 〈延吉教區 天主教略史〉, 《가톨릭 青年》 41 호(1936. 10)/ 韓允勝, <金以器와 그 弟子〉, 《가톨릭 青年》 41호(1936. 10)/ A. Hafner, KIM IKI, Miinster, 1956.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