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1869~1936)
金元永
글자 크기
2권

1 / 2
김용배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869년 5 월 18일 충청도 공주의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2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페낭(Penang) 신학교에 유 학하였으나, 그곳 기후가 한국인들에게 적합하지 않아 1892년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편입하였다. 1899년 3월 18일 종현 (현 명동) 성당에서 뮈텔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 품을 받고 그 해 5월 페 네(Peynet, 裴嘉祿) 신 부와 함께 제주도의 첫 선교사로 파견되어 제 주읍에 제주(현 제주 중 앙) 본당을 창설하였다. 이어 이듬해 9월 제주 성당이 비좁아 정의군 서흥리(旌義郡 西烘里, 현 서귀포)에 본당을 창 설하고 전교에 주력하 였으나 1901년 제주 교난으로 말미암아 황해도 봉산과 함경도 안 변 등지에서 사목하였다. 1905년 경기도 행 주 본당(1957년 폐쇄)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 여 성당을 건립하는 한 편, 1906년 10월 19일 창간된 <경향신문> 편집 실무자로 활동하였다. 1914년 5월 수원 갓등 이(현 왕림) 본당 신부를 겸하면서 본당에서 운영하던 한문 서당인 삼덕의숙(三德 義塾)을 4년제 초등 교육 기관인 신명의숙(新明義塾)으 로 발전시켰다. 1917년 9월 5일부터는 본당 사목만을 전담하여 전교에 더욱 주력한 결과 수원(현 북수동) 본당 (1923)과 진위 가마골 본당(1925)을 신설 · 분리하였다. 1933년 5월 황해도 신계(新溪)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 어 1935년 11월 19일 교통이 편하고 전체 관할 구역의 중심지가 될 정봉(丁峰)에 새 성당을 신축 · 이전하였다. 1936년 가을 성직자 피정을 위해 상경하였다가 피정 후 건강이 악화되어 주교관에서 휴양하던 중 10월 7일 선 종하였다. 《회장필지》(會長必知, 1912), 《미사 참예하는 묘한 법》(1921), 《회장피정》(會長避靜, 1931), 《신공보 화》(神工寶貨, 1931) 등의 저술을 남겼다. (-> 서귀포 본 당 ; 왕림 본당 ; <경향신문>)
※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教會史刊行事業會, 《黃海道天主教會 史》, 1984/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