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근 (1878~1943)

金允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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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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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78년 9월 14일 경기도 김포군 통진면에서 태어났다. 블랑 주교가 종현 성당 내에 설립한 한한 학교(韓漢學校)에서 한 문을 공부하다 1892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1909년 6월 5 일 사제 서품을 받고 인 천(현 답동) 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하였고, 서 울교구 주교관에서 보댕(Bodin, 邊若瑟) 신부와 기요(Guillot, 吉) 신부의 언어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1910.8). 1910년 12월 평북 용천 비현(枇峴) 본당의 초 대 주임 신부로 임명받아 성당 건립을 계획하고 이기당 (李基唐)에게 대지와 가옥의 매입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기당이 이른바 '105인 사건' 에 연루되어 그를 돕고자 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방해로 돕지 못하였다. 1911년 9 월 2,000여 평의 성당 부지와 기와집 20여 칸을 매입하 고 평안도 전교에 주력하였으며, 1913년 4월 황해도 황 주 본당으로 전임되어 조선식 기와집에 양식을 가미한 넓고 큰 성당을 그 해 10월에 준공하고, 매일 저녁 성당 에서 교리 문답을 가르쳐 교세 확장에 기여하였다. 1915년 6월 강원도 이천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28 칸의 한옥 성당과 20칸의 사제관을 신축하고(1919) 많은 신심 단체를 조직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어 종현 본당 보좌 및 성가 기숙사 사감, 그리고 성 바 오로 영아원의 책임 신부(1924)로 활동하였다. 1926년 3월 약현(현 중림동) 본당 신부로 전임되어 용산 성모 성 심 성당을 낙성하고(1926. 7. 25), 가명학교 유년반을 조 직하였으며(1927), 사제관과 청년회관을 준공하고(1934) 성당 증축도 계획하였지만 백동(현 혜화동) 본당의 신설 로 증축은 실현되지 않았다. 사제 서품 은경축을 기념하여 《영혼의 거울》(1934)을 발간하였고,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을 분리 · 독립시켰으 며(1936. 5. 10) 유치원 원사를 신축하고(1937), 언구비 (彥九碑, 현 논현동)에 있던 약현 교회 묘지에 순교비를 제막하였다(1938. 11.3). 심장병 발작으로 본당 사목에서 물러나 성모병원 담당 신부로 임명되었으나(1942. 10) ,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겨 요양하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1943년 10월 7일 선종하였다. (-> 비현 본당 ; 이천 본 당 ; 중림동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14호(1993.3).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