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진 (1906~ 1970)

金益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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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문필가. 세례 명은 프란치스코. 호는 야인(也人). 본관은 안 동. 장성(長城) 군수를 지낸 김성규(金星圭)의 3남으로 목포에서 태어 나, 어려서 한학을 배운 뒤 보통 학교를 졸업하 고 대전중학교, 서울 중 앙고보, 일본 와세다 중 학교를 거쳐 중국 북경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 공하였다. 대학 재학 시 절 학생 운동에 관련하 였고, 한때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하였으나 부모의 권유로 탈당하고 귀국한 후, 불교에 심 취하였다. 그러다가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의 인도 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행적에 감명을 받아 1936년 천주 교에 입교하였고, 이듬해 프란치스코 제3회에 가입하였 다. 이후 광주교구의 섭외 일을 맡아 하다가 1940년 장 성으로 귀향, 신앙 생활에 전념하면서 장성 성당을 건립 하였고, 8 · 15 해방이 되자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 고 가산을 정리하여 광주교구에 헌납하였다. 1948년 대 구로 이주하여 교육계에 투신, 왜관 순심중학교 교장, 김 천 성의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6 25 동란 중 에는 대구교구에서 발행하던 <가톨릭시보>의 편집인으 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종전과 함께 다시 교육계로 돌아 가 경주 근화여자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1955년부터 문필 생활에 전념하여 많은 기고문과 번역 서를 남겼으며, 1967년 한 쪽 눈을 실명한 후로는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다가 1970년 1월 6일 고혈압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번역서로 《레지오 마리애 직무 수첩》(1956), 《동 서의 피안》(가톨릭출판사, 1961), , 《동방 문화와 공교》(분도 출판사, 1965) 《내심 낙원》(성바오로출판사, 1966) 등이 있 고, 유고집으로 《민속과 서학》(성바오로출판사, 1971)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교회와 역사》 180호(1990. 5) .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