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륜 (?~1868)

金宗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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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박해(戊辰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루가. 보 명은 경희(敬熙). 본관은 경주. 언양 현감을 지낸 희빈 (喜彬)의 손자로, 어렸을 때 충청도 공주에서 영세 입교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를 피해 부모를 모 시고 경상도 상주군 멍에목(駕項, 현 경북 문경군 동로면 鳴田里)으로 피난했다가 다시 언양 간월(현 경북 울주군 상북면 登億里)을 거쳐 울산 대재(竹嶺, 현 경남 울주군 상북 면 梨川里) 교우촌으로 이주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언양 에서 이주해 온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회장과 김해에 서 이주해 온 허인백(許仁伯, 야고보)을 만나게 되었는 데, 이들 셋은 그 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산중을 헤매던 중 한 굴(이른바 범굴)을 발견하고 그곳을 피난처로 삼아 목기를 만들어 팔며 신앙 생활을 계속하였다. 1868년 덕산 굴총 사건(德山掘塚事件)의 여파로 무진 박해가 일어난 5월경(음), 경주 포졸에 의해 그들의 피난 처가 발각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그들은 경주 진영으로 압 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모두 신앙을 굳게 지키고, 다시 울산 감영으로 이송 되어 신문을 받은 뒤 8월 14일(음 7월 28일) 장대벌 (현 울산시 병영동 5번지)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부인 조아의 증언에 따라 가족들에 의해 각각 수습되어 경주 진목정(眞 木亭, 현 월성군 산내면 내일리) 안산에 합장되었다가 1932년 5월 29일 대구 감천리에 있는 교회 묘지로 이장되었고, 1962년 10월 25일 석곽에 모셔져 묘 지 성모상 앞에 안치되었다가 1973년 10월 19일 대구 신천동 복자 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 (→ 이 양등 ; 허인백 ; 진목정) ※ 참고문헌  《치명 일기》/ 《日 省錄》/ 金九鼎, 《嶺南殉敎 史》, 대건출판사, 1966/ 김정수, <부산 동래 순교자 답사기>, 《교회와역사》 13호(1976. 10).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