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택 (1922~1990)

金鍾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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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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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신부.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 요셉. 본관 김해. 구교우 자손. 1922년 3월 15일 전북 익산군 여산면 대성리 성치(臺 城里 城峙)에서 김진배(金辰培, 안드레아)와 권영일(수 산나)의 사이에 4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여산국민 학교를 거쳐 대구 해성 소학교를 졸업 한 뒤 1939년 서울 동성상업 학교 을조에 입학 1944 년 졸업하고, 3월 25일 대구 성 유스티노 대신 학교로 입학하였으나 폐교되어 원산 덕원 신 학교에 편입하였다. 1946년에는 다시 서울 성신대학으로 편입하여 1950년 4월 15일 졸업 과 동시에 노기남(바오로)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전주 전동(殿洞) 본당 보좌 신부로 임명되었다.그 후 6 · 25 동란 때에 교구장과 다른 동료 사제들과 함께 체 포되어 8월 3일 전주 교도소에 투옥되었다가 9월 27일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1952년 8월 20일 전주 대동(大同, 중앙 본당의 전신) 본당, 1954년 5월 19 일 장계(長溪) 본당을 거쳐, 1955년 7 월 18일 김제(金堤) 본당 신부로 임명 되어 성당, 사제관, 유치원을 신축하고 용지 공소를 설립하였으며, 1956년에 는 유치원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1958 년 1월 6일 부안(扶安) 본당으로 전임 되어 다음해부터 성당, 강당, 사제관, 식당 등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공 사비 관계로 완공하지 못하고, 1961년 7월 5일 교구청 경리부장(당가)으로 전 임되었다가 1963년 7월 18일 전동 본 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신심 교육에 힘썼다. 여기에서 그는 성 김대건(金大 建, 안드레아) 신부의 문중 후손답게 부 임하자마자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순교 자 현양 운동에 발맞추어 복자 부녀회 를 창립하고, 이듬해 7월 5일 김대건 신부 사진전을 가졌으며, 레지오 마리 애 활동을 강화하여 소년 꾸리아를 조 직하였다. 1965년에는 성 프란치스코 재속 3회와 글라라 형제회를 조직하고, <가톨릭 시보>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여 이 운동을 교구 내 전 본당으로 확산시 켰다. 1966년 9월에는 교구 지시에 따 라 사도회를 조직하고, 이듬해 9월 글 로리아 성가대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1967년 12월 12일 함열 (咸悅)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다가 1970년 5월 12일 부주교 및 사무총장 에 선임되면서 덕진(德津) 본당 주임 신부를 겸직하였다. 이듬해 1971년 4월 1일 부주교직을 사임하였으나 9월 1일 재임되었고, 1972년 9월 1일 부 주교직과 사무총장직을 면제받고 덕진 본당만 담당하였 다. 1973년 4월 25일 다시 부주교 겸 사무총장에 임명 되었고, 1977년 4월 7일 이를 사임하고 5월 10일 복자 본당 주임에 임명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1979년 본당 재산 관리위원회를 조직하여 신도들에게 본당 재정 운영 의 책임을 맡겼으며, 신앙 교육에 힘쓰는 한편 레지오 마 리애 활동을 육성하여 7개의 쁘레시디움을 증설하고 빈 천시오회를 조직하였다. 또 1982년 2월에는 신학생과 불우 학생들의 장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동양화 및 서 예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1982년 9월 24일 대야(大野)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다가 1985년 9월 4일 은퇴하였 으며, 1990년 11월 6일 선종하여 치명자산 성직자 묘소 에 안장되었다. 〔金眞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