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 (?~1816)
金宗漢
글자 크기
2권

1 / 2
김종택 신부의 지도로 결성된 복자 부녀회(1963년 2월 23일).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일명 계원. 보명은 한현(漢鉉)이고, 종한은 그의 관명 .본관은 김해. 1814년 해미(海美) 옥에서 순교한 김진후 (金震厚, 비오)의 셋째 아들로,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포청의 옥에서 교수당한 성 김 데레사의 부친이며, 김대 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종조부이다. 충청도 면천 (沔川) 땅 솔뫼(현 당진군 우강면 松山里)에서 태어나 부친 의 가르침을 받아 입교하였으며, 부친이 오랫동안 박해 를 받아 옥중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신앙을 굳건히 하는 동시에 더 나은 신앙 생활을 위해 경상도 영양(英陽)의 우련발(雨蓮田, 현 봉화군 재산면 葛山里)으로 피신하여 살 았다. 이곳에서 그는 교리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 생활을 극진히 하는 한편, 교회 서적을 필사하여 배포하거나 이 웃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1815년 경상 도 지역에서 을해박해(乙亥迫害)가 일어나자 4월 23일 (음) 안동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안동 진영에서 신문을 받 게 되었다. 가혹한 신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교하기를 완강히 거 부하고 신앙을 지킨 뒤 김희성(金稀成, 프란치스코), 김 화준(金若古排, 야고보) 등과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 되었는데, 이때 배교하고 석방되는 김윤덕(金允德, 아가 다 막달레나)을 감영 문 앞에서 만나 그의 잘못을 꾸짖 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여 순교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리 고 자신은 무수한 형벌과 회유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 앙을 지킴으로써 이해 말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사형 집행에 대한 임금의 윤허가 나지 않았으므로 동료들과 함께 순교할 때를 기다리면서 옥중에 있게 되었다. 그 동 안 그는 형과 교우들에게 서한을 보내 신앙을 굳게 지키 도록 당부하였는데, 현재 이 서한은 남아 있지 않고, 그 내용만이 달레(Ch. Dallet)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전해진 다. 이렇게 20여 개월을 옥중에 있던 중 마침내 임금의 윤허가 내려와 1816년 12월 26일(음 11월 8일) 대구 감 영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김 데레사 ; 김진 후 ; 김종한)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日 省錄》/ 《純祖實錄》.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