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후 (1738~1814)

金震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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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비오. 보명은 운조(運祚)이고, 진후 는 그의 자. 본관은 김해.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 자 김종한(金宗漢, 안드레아)의 부친이며, 성 김제준(金 濟俊, 이냐시오)의 조부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 부의 증조부. 충청도 면천(沔川) 땅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松山里)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천주교에 입교하 기 전에는 하급 관직에 있었으나, 신앙을 받아들인 뒤에 는 모든 것을 버리고 열심히 신자의 본분을 지키면서 가 족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쳐 하나씩 입교시켰다. 그 시기 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되고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이 내포(內浦)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그에게 천주교 교 리를 전해 준 사람은 이존창으로 추측되지만, 그 입교 동 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가 처음 박해를 받은 것은 1791년에 일어난 신해박해(辛亥迫害)의 여파로 충청도 지역의 신자들이 탄압을 받을 때였다. 당시 그는 신앙을 고백하고도 즉시 석방되었는데, 이후에도 계속 신앙 생 활을 하다가 4~5차례나 체포되어 전주 · 홍주 · 공주 등 지에서 무수한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면서도 끝내 신 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박해(辛酉 迫害) 때 다시 체포되어 유배형을 받고 풀려난 뒤 1805 년에 다시 체포되어 해미(海美) 옥에서 약 10년 간 옥중 생활을 하다가 1814년 12월 1일(음 10월 20일) 옥사하 였다. 그러나 그가 가족들에게 전한 천주교 신앙은 이후 여러 명의 순교자를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그 신 앙은 한국 천주교회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 었다. (→ 김대건 ; 김제준 ; 김종한)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