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1902~1969)

金昌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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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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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 몬시뇰.


광주대교구 신부. 몬시놀. 세례명은 바오로. 1902년 7월 7일 김재수(金在壽, 필립보)와 임(林) 마르티나의 4 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전북 부안군 부안면 남포리(扶安 郡 扶安面 南浦里)에서 출생하였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 를 졸업한 후 1929년 5월 25일 대구 계산동 본당에서 뮈텔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능다리 본당(현 전 주교구 신태인 본당, 全北 井邑郡 山內面 菱橋里)에서 사제 생 활을 시작하였고, 제주도 홍로 본당 주임을(1933. 5. 21) 거쳐 나주 계량(현 광주대교구 노안)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 어(1936. 6. 29) 본당 사목뿐 아니라 교육에도 주력하였 다. 수천 평의 논밭을 매입하여 학교 건물을 건립하고 4 년제 보통 학교인 신성 학술 강습원을 신설하여 수백 명 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어 보성 본당 주임으로 부임 하여(1939. 12) 활동하던 중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 본의 준적성국인 미국인 골롬반회 선교사들과 관계를 맺 는다는 이유로 목포 교도소에 감금되었다. 풀려난 후 장 성 본당 주임(1944.3), 광주교구장 비서(1945. 6)를 역임 한 후 함평 본당 초대 주임 으로 전 임 되어 (1945. 11) 성당 신축 공 사를 마무리하였으나 (1950. 6) 6 · 25 동란으 로 불타버렸다. 그 후 본당을 방문한 교황 사 절의 지원으로 건평 54 평의 성전을 준공하고 (1952. 10. 13), 수녀원을 마련하여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을 초대하였으며 (1953. 4), 성모유치원을 설립하여(1953. 8) 어린이 교육 에도 기여하였다. 이어 나주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1954. 11.5) 남평(南平)에 공소 건물과 부지 1,000평을 매입하고 전교사를 파견하였으며 까리따스 수녀회를 초 대하였다(1956. 12). 또한 남평에 건평 30평의 사제관을 신축하고(1957. 2. 1), 산포면 덕례리(山浦面 德禮里)에 공소를 개설하였으며(1958. 2. 12), 나주 청동에 3,120평 의 교회 묘지를 마련하였다(1959. 7. 13). 1961년 7월 30일 성 골롬반 외방전교회 신부들을 도 와 광주교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교황 요한 23세에 의 하여 울반 명의 몬시놀로 서임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명의 몬시놀로 서임된 김창현 몬시놀의 착복식은 8월 21일 광주교구장 헨리(H. Henry) 주교의 집전으로 나주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이어 목포 경동 본당 주임으 로 전임되었고(1964.4.7), 다시 광주 남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1965. 9. 1) 사목하던 중 1969년 8월 28일 교통 사고로 선종하였다. (→ 나주 본당 ; 장성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06호(1992. 7).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