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무 (1910~1986)
金忠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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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김충무 신부.
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글레멘스. 덕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6월 7일 연길교구 신부로 서품되었다. 이후 만주의 용정, 훈춘, 명월구에서 사목하다 1943년 3월 평양교구 비현 본당 신부로 임명되었고, 1946년 10 월 안주 본당 신부로 전임되어 활동하던 중 주일 강론이 끝나고 신자들에게 연 길교구 성직자를 위한 기도를 부탁한 것이 문 제되어 북한 공산 당국 에 소환당하기도 하였 다. 이어 황해도 사창 본당 신부로 임명되어 (1948. 9) 사목하던 중 공산 정권의 계속되는 감시와 심문에 황주의 정방산(正方山)과 평남 만성(萬城)에 은신하였 다. 그러나 시력이 극도 로 약화되었기에 서울 에서 치료를 받고자 월남할 것을 계획하고 1950년 11월 피난민 대열에 끼어 해주를 경유하여 월남하였다. 이후 1951년 9월 부산 동래 본당 초대 신부로 임명되어 유치 원을 설립하고(1945. 5), 목조 성당을 건립 · 축성하였다 (1954. 10. 24). 그리고 1957년 7월 진해(현 진해 진양) 본 당 신부로 전임되어 사목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62 년에 사목 일선에서 은퇴하였다. 그 후 당시 부천에 있던 인보 성체 수도회 수도원에 6개월 간 머무르다가 갈수록 시력이 떨어져 동생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다시 5년 후 에는 교구에서 마련해 준 집에서 기도의 삶을 살다가 1986년 5월 3일 선종하였다. (→ 동래 본당 ; 사창 본 당)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