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관 (1919~1990)

金泰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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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신부. 세례명은 토비아. 1919년 3월 15일 부 산시 동구 좌천동 566번지에서 김일수(안토니오)와 박 아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 일본 상 지(上智)대학에 진학하여 철학을 전공하고, 1939 년 4월 12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 으며, 1945년 상지대학의 전문부 신문학과에서 독 일어를 강의하였다. 1947년 일본 요꼬스까 예이꼬 중고등학교의 설립에 참여하여 교사로 있었으며, 1950년 8월 24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1951년 벨 기에 루벵 생탈베르(St. Albert) 대학에 진학하여 신 학을 전공으로, 생물학과 윤리학을 부전공으로 수학하고, 이어 독일 쾰른 · 뮌스터(Münster) 대학에서 비교 문화학을 연구하는 한편 예수회 제3 수련을 하였다. 1952년 미국 뉴욕 포럼(Foraham) 대학 대 학원에 진학하여 교육학을 이수하고, 1954년 2월 2일 종신 서원을 한 다음, 1956년에 상지대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종교학 과, 의예과) · 미대(미학과) 강사(1956), 서강대학교 철학 과 조교수(1960), 광주 가톨릭대학 교수 및 교학과장 (1962)을 거쳐, 1965년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담당하 였다. 1985년 2월 15일 국민 훈장 석류장을 수상하였 고, 1989년부터 예수회 양성 책임자(교육감)로 후진 양 성에 주력하였다. 김태관 신부의 일생은 예수회 수도자로서, 교육자로서 일관되었는데 특히 동양과 서양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 었다. 동서의 만남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 에서 상봉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으며, 평신도 활동 특히 가톨릭 지성인들의 활동을 강조하였다. 1956년 장면(張 勉), 장발(張勃), 박갑성(朴甲成), 구상(具常) 등과 함께 '장안문화원'(長安文化院)을 창설하여 가톨릭 아카데미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가톨릭 대학생 운동의 요람인 '뉴먼 클럽' (Newman Club)을 조직하여 서울대학교(1956.11), 연세대학교(1957. 12), 성균관대학교(1958. 10), 이화 여자대학교와 중앙대학교(1959) 가톨릭 학생회를 이 뉴 먼 클럽에 가입하도록 하였다. 이어 '뉴먼 어소시에이 션' (Newman Association)을 조직하고 기관지 《갈대》를 창 간하였다(1960). 쟈크 마리탱(Jacques Maritain)의 영성적 제자임을 자처하였던 김태관 신부의 사상은 한마디로 '완전한 휴머니즘' (I' humanisme integral)이라고 할 수 있 다. 1990년 4월 10일 서강대학교 신학원 강의실에서 수 련자들에게 수업하던 중 선종하였다. 저서로 《아름다운 세기(世紀)》(대조사, 1964)와 《라틴어 철학 용어집》, 논문 으로 <니체와 그리스도교>, <막스 셀러의 윤리 사상> 등 이 있고, 역서(譯書)로 지크문트(G. Siegmund)의 《원시인 (原始人)의 신앙》(Der Glaube des Urmenschen, 분도출판사, 1972)과 쟈크 마리탱의 《시와 미와 창조적 직관》(Creative Intuition in Art and Poetry, 성바오로출판사, 1982) 등이 있다. (→ 예수회 )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26호(1994. 3).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