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헌 (?~1801)
金風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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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한국 천주교회 초기의 신자. 세례명은 토마.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중인 집안 출신으로 충청남도 청양(靑陽)에 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본래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향임(鄕任) 직책 인 풍헌(風憲)에 오르게 되었고, 이후 김 풍헌' 으로 불 리게 되었다. 천주교인이 된 후에도 그는 풍헌을 계속 맡 아보는 한편, 신자의 본분을 지키며 가족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1796년에 체포되어 청양 관아로 압송된 후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신앙을 굳게 지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현감 이 교체되면서 형이 집행되지 않고 마을에서 추방되는 몸이 되었다. 이후 그는 고향을 떠나 부여, 금산, 고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극기 생활을 하는 한편 교우들을 모 아 가르쳤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가족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자수하려 하였으 나, 가족들의 만류로 이를 포기하고 피신해 다니다가 그 해 7월(음) 전라도 용담(龍潭)의 한고기 마을에서 병사 하였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上.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