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성 (1919~1954)
金厚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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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성 신부.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 프란치스코. 본관 경주. 구교우 가정의 후손으로 1919년 10월 10일, 전북 진안군 백운 면 반송리(盤松里) 두원(斗元)에서 김한명(金漢明, 프란 치스코, 일명 學壽)과 강방선(세실리아)의 장남으로 태 어났다. 1933년 백운소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성 유스티 노 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35년 4월 1일 서울 동성상 업학교 을조로 편입하였으며, 1940년에는 다시 대구 성 유스티노 대신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44 년 학교가 폐지되자 덕원 신학교에 편입했다가 1946년 에는 서울 성신대학으로 편입하여 그해 9월 8일 차부제 품을, 11월 21일에는 부제품을 노기남(바오로) 주교로 부터 받았다. 1947년 4월 12일 대구에서 무쎄(Mousset, 文濟萬) 주 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4월 25일 정읍(井邑) 본당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가 1950년 4월 10일 수류(水 流) 본당 주임 신부로 전임되어 이곳에서 6 · 25 동란을 맞았으나, 피난하지 않고 본당을 지키면서 이곳으로 피 난 온 전주교구장 김현배(金賢培, 발도로메오) 신부 등 성직자 8명과 수녀 14명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러던 8월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가서 구금되고 모진 매를 맞아 몸에 깊은 병을 얻기도 했으며, 원평 과수원 창고에 갇혀 있다가 9월 27일 구사일생으로 구출되었다. 1951년 2월 20일 군종 신부로 입대, 보병 제7 사단에 배속되어 백마 고지(白馬高地) 피의 능선 등 최전방에 서 복무하다가 제1 육군 병원으로 전출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1954년 여름 간경화증으로 제대하여 전주교구청에 서 거처하며 투병하다 가 전주 성모병원에 입 원 가료 중, 1954년 12 월 27일 36세를 일기로 선종하여 치명자산 성 직자 묘소에 안장되었 다. 김 신부는 사제 생 활을 하는 동안 별명이 '쌍투스' (Sanctus, 성인) 였고, 사후에도 한결같 이 '성인 신부' 로 기억 되고 있다. [金眞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