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휘중 (1884 ~ 1918)
金輝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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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김휘중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 례명은 요셉. 1884년 3월 7일 강원도 춘천 버들골에서 김 야고보 와 최 안나(최양업 신부 의 질녀) 사이의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한문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점차 사 제직에 대한 원의가 간 절해지면서 풍수원 본 당 정규하(鄭圭夏, 아 우구스티노) 신부에게 신학교 입학 허락을 간 청하였다. 그러나 정 신부는 그의 신체가 약하고 또 외아들인지라 즉시 허락 하지 않았는데, 그 원의가 간절하고 또 부모 역시 열심한 교우 집안이기에 마침내 허락하였다. 1902년 9월 13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17년 9월 22일 에 서품되었고 경기도 행주 본당에 부임하면서 사제 생 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행주 본당은 교세가 빈약하고 그 나마 냉담자가 많아 사목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김 신부는 비오는 날에는 나막신을 신고 다닐 정도의 열 성으로 신자 방문에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이런 열성에 감화를 받은 많은 냉담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되 었다. 또 교우들이 외인 동네에 살 경우에도 직접 방문하 여 성사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쌀까지 가지고 가 서 나누어 주며 신자들의 어려움에 함께하였다. 그러던 중 부임 이듬해인 1918년, 독감이 유행하면서 교우들 중에 환자들이 발생하자 이들을 방문, 위로하다가 불행 히도 자신이 전염되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리고 약 8 일 후 조금 차도가 있어 미사를 봉헌하였으나 미사 후에 갑자기 병이 더욱 위중해지면서 병자성사를 받고, "나 오래 살기를 원치 않고 늙으신 부모님이 걱정되나 나 도 무지 관심치 않는다" 라는 말을 남기고 1918년 11월 12 일 선종하였다. ※ 참고문헌 《경향잡지》 410호(1918. 11), pp. 508~511.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