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금 (1765~1815)
金興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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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일 명 명숙.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태어나 1801년에 입교 하였으며, 너무 가난한 탓에 고향에서는 생활할 수 없었 으므로 입교한 지 얼마 안되어 연풍(延豊) 교우촌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이곳 교우촌 신자들이 대부분 신유 박해(辛酉迫害)로 체포되자 가족들을 데리고 경상도 진 보(眞寶) 땅으로 피신하였다. 여기에서 그의 아내는 사 망하였고, 그는 19세 된 아들 장복(長福)과 딸 하나를 데리고 신앙 생활을 하였는데, 가난하였음에도 애긍하는 일과 남을 돕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을 섰다. 그러던 중 1815년 머루산(현 경북 영양군 石浦面 葡山洞) 교우촌에서 부활 축일을 지낸 뒤 몇 일이 안되어 부친을 비롯한 30 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안동 진영에서 혹형을 받았다. 이때 그의 딸 작단(作丹)은 배교하였으나, 그는 아들과 함께 형벌을 이겨낸 뒤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 고, 그곳에서 다시 문초를 받은 후 10월(음)경 옥사하였 다. (→ 김장복 ; 을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純祖實錄》/ 《日省錄》.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