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성 (?~1816)
金稀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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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 코. 일명 경서. 1801년에 순교한 김광옥(金廣玉, 안드레 아)의 아들. 충청도 예산(禮山)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 암면 신종리) 출신. 어려서부터 글공부에 열심이었고, 부 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에는 그의 가 르침에 따라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부친 이 순교하자 가족들을 데리고 경상도 영양(英陽) 일월산 (日月山)에 있는 '곧은정' (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소재)이 라는 곳으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나무 뿌리와 도토리로 연명하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교회 서적을 읽으며 기 도와 극기로 신앙을 지켜 나갔다. 1815년 3월 배교자 전지수의 밀고로 안동 포졸들이 그를 체포하러 오자, 아 들에게 남아서 집안을 보살피라는 부탁을 하고 집에 들 러서는 아내에게 신앙을 지켜 장차 자기 뒤를 따르도록 하라고 이른 뒤 순순히 포졸들을 따라 나섰다. 그는 처음 안동 진영에서 신문을 받고 신앙을 증거한 뒤, 김종한 (金宗漢, 안드레아), 고성대(高聖大, 베드로) · 성운(聖 云, 요셉) 형제 등과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 리고 이해 말에 사형 선고를 받은 뒤 20여 개월을 옥중 에 있던 중 마침내 임금의 윤허가 내려와 1816년 12월 26일(음 11월 8일) 대구 감영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 였다. (→ 김광옥 ; 김종한 ; 을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純祖實錄》/ 《日省錄》.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