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산〕bodhi · 〔영〕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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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깨달음은 무지와 갈애를 걷어내어 얻는 체험적 변화.
아시아의 종교 전통 특히 불교에서 실재의 본성에 관 하여 완전하며 직접적인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실존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일종의 체험을 가리키는 말. 사물을 단 순히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있는 그 대로 '꿰뚫어 보는' 체험을 '깨달음' 〔覺, 菩堤〕이라 한 다. 그러므로 이를 체험한다는 것은 잘못된 착각이나 무 지를 버리고 습관적인 이해의 어두운 베일을 헤침으로써 진리 그 자체의 명징(明澄)한 빛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 한다. 깨달음을 체험한 사람은 내적인 통제력을 획득함 으로써 세계의 외형적 구조나 힘마저도 좌우할 수 있다 고 믿어진다. 깨달음이란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는 보디(bodhi)이다. 일반적으로 '완전하게 앎' 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깨달 음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빛나는, 일종의 밝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보디' 는 "알다, 깨닫다"의 동사 어근 부드 (budh)에서 파생되었으며 "깨달은 이"라는 뜻의 붓다 (buddha)도 여기서부터 파생된 것이다. 깨달은 이, 즉 붓 다는 인간과 세계에 관한 모든 무지를 털어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참다운 세계를 완전하게 알게 된 사람이다. 또 한 '보디' 로부터 삼보디(sambodhi)라는 말이 파생되었는 데, 이 말은 "최고의 가장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깨달음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전통들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자이나교 의 용어로서 '세계를 막힘 없이 완전히 아는 지혜' 라는 의미의 케발라즈나나(kevalajñāna)라는 단어는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최고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의 아라한(arahan)을 지칭하여 사용되는 말이다. 비슷한 예 로 힌두교의 요가 전통에서는 '무지에서 벗어난 지고의 자율적인 상태' 를 뜻하는 카이발랴(kaivalya)와 '절대적 인 마음의 평정' 을 뜻하는 사마디(samādhi)를 체험하라 고 가르치는데, 이 두 체험은 모두 요가 수행자로 하여금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고통스럽고 끊임없는 윤회의 사슬 에서 벗어나는 깨달음과 해탈로 이끌어 준다고 한다. 〔불교와 깨달음〕 깨달음의 내용과 그 체험을 가장 적 절하고 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는 종교는 역시 불교이다. 깨달음은 불교 내에서도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불교 의 깨달음은 세계를 자신의 욕망이나 기대 혹은 습관에 따라서 왜곡시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이해 하는 체험 혹은 그 과정에 초점을 둔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을 겪으면서 두려움과 의 심을 느끼고 불안과 절망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다. 그 런데 인간이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세계를 있 는 그대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이기적인 방 식대로 세계를 취하려는 잘못된 생각과 욕망, 즉 무지 (無知, avidya)와 갈애(渴愛, tanha)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통스런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자신의 노력으로 무지와 갈애를 극복하고 자비심 (慈悲心)을 키움으로써 세계와 다른 이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덧씌워진 잘못된 생각과 욕망, 곧 무지와 갈애 를 없애는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불교의 깨달음이란 자 신과 세계에 대한 오도(誤導)된 생각과 욕망인 무지와 갈애를 걷어내는 데서 오는 체험적 변화와 그 과정이다. 깨달음의 길 : 이기적인 조건을 덧씌우지 않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깨달음의 경지는 어떤 것이며 또한 어 떻게 성취되는가? 기원전 538년 인도 북부 붓다가야 (Bodh Gaya)의 한 보리수 아래서 35세의 고타마 싯다르 타(Gautama Siddhaartha)가 체험한 깨달음에 관한 기록을 통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그런 것처럼 싯다르타 역시 이기적인 욕망, 두려움, 성적인 욕구, 유 약(柔弱)함, 게으름, 의심, 위선, 자만심, 자기 과시 등 여러 가지 유혹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이러한 감정들 을 정면으로 맞서서 이겨 나갔다. 전형적인 전기(傳記) 나 전통적인 가르침을 따르면서 구도의 길에 들어선 고 타마 싯다르타는 네 가지 단계의 선정(禪定)에 몰입했 다. 첫 번째 단계에서 그는 자신의 주의를 외부의 사물로 부터 자신의 내면으로 돌렸다. 두 번째 단계에서 그는 더 이상 산만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들어갔다. 세 번째 단 계에서는 차분히 가라앉은 냉정한 희열을 느꼈다. 네 번 째 단계에서는 쾌락과 고통, 행복감과 걱정과 같은 모든 종류의 대립적(對立的) 감정들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느 꼈다. 싯다르타가 체험한 네 번째 단계의 선정이 바로 '순수하고 절대적인 깨달음의 상태이며 완전한 적정(寂 靜)의 경지' 이다. 싯다르타는 이 네 가지 단계의 선정을 거쳐 다음 단계의 수련으로 옮겨 간다. 전승에 따르면 이 선정에 뒤이어 그는 여섯 가지의 신비하고 특별한 능력 〔六神通力〕을 얻게 되는데, 그 여섯 가지 능력은 우주 삼 라 만상의 모든 존재와 사건들을 통찰하는 능력, 모든 곳 에서 생겨나는 소리와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 어느 곳이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능력, 다른 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전생(前生)의 일을 알 수 있는 능 력, 마음속에서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능 력들이다. 그는 이러한 신통력을 단순히 놀라운 마법적 인 이적을 행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 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데 사용한다. 그 는 자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들의 특수한 심리 적, 실존적 곤경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다 시 말해서 그는 모든 이들이 어디서 생겨났으며 어떻게 현재와 같은 곤경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 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어떠한 입장에 있거나 온전한 자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통의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즉 인 생의 존재 양식' 〔四聖諦,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통의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길〕과 '세계의 존재 양식' 〔三法印〕 그리 고 '일체 존재의 존재 양식' 〔緣起〕에 관한 것이었다. 인 간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까닭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正視, sammaditthi〕 못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세 계를 소유하려는 집착과 욕망 때문이며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러한 집착과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자유로워져 야만 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심원한 바다를 알기 위해서 는 이기적인 소유욕에서 오는 욕망의 불길을 꺼야만 한 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성취 : 이기적인 생각을 걷어내는 일, 이것 이 열반(nirvāna)이며 깨달음이다. 싯다르타는 새벽이 동 터 올 무렵 이 열반을 성취하였다. 그것은 실제의 본성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보리수 아래서 일어서는 순 간 싯다르타는 이제 깨달은 사람, 즉 붓다가 되었다. 불 교의 교리대로 말하자면, 붓다란 인간의 보편적 조건인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대자유를 얻은 자라는 뜻이다. 이 해탈과 완전한 대자유의 성취는 반드시 깨달음의 체 험을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고 통의 소멸과 해탈의 성취는 진리에 대한 무지를 타파하 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란 사물과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사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버리고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체험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체험은 우주와 인 생의 보편 타당한 진리를 올바르게 보고 참되게 아는 데 서 온다. 이 깨달음은 고행을 통해서도 아니고 쾌락을 통 해서도 아니며 형이상학이나 관념을 통해서도 아닌, 명 상을 통한 올바른 정신 집중(三昧, samadhi)에 의해서 체 험되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와 인생의 보편 타당한 진리란 연기(緣起), , 중도(中道), 공(空)의 도리이다. 이 세 단어는 똑같은 의미를 가진 말로서, 세 계의 모든 존재는 독립적인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상호 관련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것은 이러한 진리를 완전히 자기화하여 체득함으로써 자 율적이고 자주적이며 한없이 자유로운 인격을 완성한다 는 뜻이 된다. 대승 불교의 전통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체험 역시 사 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 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깨달은 사람은 이기적인 생각 없 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대승 불교 전통에서 가장 중심적 줄기를 형성한 중관(中觀) 학파의 주장에 의하 면, 모든 사물은 어떠한 실체적 존재도 아닌 공(空)이며 그래서 결국 어떠한 정의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라 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승 불교 전통의 반야경(般若 經) 사상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공으로 이해하려는 사 람은 지혜〔般若, prajñā〕를 연마해야 한다고 한다. 이 반 야의 획득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무상한 존재 속에 상주 하는 진리를 발견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존재 방식이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의 지혜란 모든 사물을 '올바로 보는 통찰' 을 의미하며 이는 곧바로 완전한 깨 달음을 뜻하는 것이다. 〔선불교와 깨달음〕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고 선불교 가 발전하게 되자 깨달음의 체험은 이 선불교의 전통 안 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설명되기에 이른다. 중국에서 전 개된 초기의 선불교는 경전에 근거하여 차츰차츰 선정 (禪定)의 수행을 쌓아 나아감으로써 깨달음에 도달하려 했다는 점에서 인도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 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혜능(慧能, 638~713)과 신수 (神秀, 670~762)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르러서 커다란 변 화를 겪는다. 특히 혜능의 선불교는 깨달음의 내용과 방법에서 인도 의 불교와 커다란 차이를 보여 준다. 인도의 불교는 연기 (緣起)와 중도(中道), 즉 공(空)을 깨달음의 내용으로 삼는 데에 비해서, 중국의 선불교는 사람의 마음〔心〕을 깨달음의 내용으로 삼는다. 그리고 인도의 불교가 차츰 차츰 깨달음에 도달하는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데 비하 여, 혜능 이후의 선불교는 한 순간 모든 것을 깨닫는 돈 오(頓悟)를 주장한다. 돈오를 주장하는 선불교의 핵심은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가르침 이외에 따로 전하며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본래의 성품을 봄으로써 깨달 음을 이룬다' (不立文字 教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라 고 하는 유명한 네 구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드 러나듯이 단번에 얻는 깨달음을 주장하는 선불교는 언어 나 문자에 의한 가르침을 중시하지 않는다. 언어 문자에 의한 논리적 추구는 오히려 선 수행의 궁극적 목표인 깨 달음의 체험에 장애가 된다고 여긴다. 선의 핵심적 요체 인 깨달음은 어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 의 본성을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혜능 이후 한 순간에 모든 것을 깨닫는 돈오선의 수행 방법은 조사선(祖師禪)이라고 불리면서 동북아시아 선 불교의 주된 입장이 되었다. 이 방법은 인도 불교식의 단 순한 좌선 대신에 옛 선사(禪師)들이 제시한 공안(公 案), 즉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주된 수행 방법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공안이라는 것은 조사선의 전통에서 유명한 조사들의 언행을 중시함으로 써 생겨난 깨달음과 관련된 짤막한 이야기들이다.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이라는 스님이 절에서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스승인 남악회양(南 嶽懷讓, 677~744)은 좌선에 열중해 있는 도일의 옆으로 기왓장 하나를 들고 와서는 그것을 숫돌에다 열심히 갈 아대기 시작했다. "선생님,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십니 까?" "으응, 거울 만들려고." "아니, 기와를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래? 좌선을 한다고 어찌 부처 가 될까?" 도일은 스승과의 이러한 몇 마디 대화 끝에 삶과 죽음의 의문이 확연히 풀려 버리는 깨달음을 체험 했다고 한다. 바로 조사들의 깨달음과 관련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공안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들 은 이러한 공안을 깨달음을 위한 선정(禪定)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간화선은 공안을 참구하는 방 법으로 삼아서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자각케 하려고 하는 수행이며 지혜에 의한 깨달음을 얻 고자 하는 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좌선을 경시함으로 써 선 본래의 존재 방식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 기도 하였다. 〔논의와 제언〕 깨달음의 표현 방법 : 깨달음이라는 주 제에 대해서는 다양하고도 오랜 기간에 걸쳐서 논의가 지속되어 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깨달음이 결코 말로써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체험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은 특히 대승 불교의 여러 전통들에서 두드러 지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특히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에 관한 논의 자체를 힐난한다. 깨달음이란 말로써 표현될 수 있는 모든 범주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 지어 중국의 선불교 전통에서 고전으로 간주되는 《무문 관》(無門關)에서는 경전도 하나의 언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깨달음의 체험을 표현해 낼 수는 없다고 한다. 그 러나 깨달음이 말로써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체험임에도 불구하고 깨달음 역시 체험의 일부분인 것만은 분명하 다. 어느 날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은 붓다는 아무 런 말없이 꽃 한송이를 들어서 모인 청중들에게 보여 주 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의미를 이해한 사람이 없는데, 붓다의 수제자였던 가섭(Kasyapa) 존자만이 빙그레 미소 로 답하였다. 그러자 붓다는 가섭 존자를 깨달은 사람으 로 인정해 주었다. 체험은 언어로써 표현될 수 없다는 점 과 그렇지만 그것이 일종의 체험인 한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흥미로운 예화(例話)로써 설 명하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체험은 논리나 언어로써 표현 또는 전달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독특한 방식을 통해서 스승이 제자의 체험을 확인하고 인정해 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둘러싼 논의 가운데 가장 곤혹 스러운 문제는 깨달음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 이 없다는 것과, 선승(禪僧)들 스스로가 고백하고 있듯 이 정말 선을 지도하는 모든 스승들이 충분한 자격을 갖 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적 제언 : 일본의 한 선승인 야스다니(Yasutani, Ryoko)는 깨달음의 본질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깨 달음은 자신의 본성과 우주와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 는 것을 뜻한다.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것이 깨달음의 지혜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성은 진리라 불리워도 좋다. 불 교에서는 옛부터 이것을 여성(如性) 또는 불성 또는 일 심(一心)이라고 불러 왔다." 또 이 같은 체험에 대한 그 리스도교적인 해석' 은 에노미야 라살레(Enomiya Lassalle) 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깨달음은 모든 피조물을 무차별적 관점에서 보는 것과 연결되는 초이성적이고 직 접적인 지각이다. 이 지각은 경험적 자아(Ego)의 붕괴를 통해 참된 자기를 포착하는 것이고, 참된 자기는 피조물 의 원천인 한에 있어서, 참된 자기의 앎은 절대자와 접촉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개개인의 기질에 따라 형태와 격렬도의 다양성을 용인하는 경험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함없는 기쁨, 평화, 확실성이며, 공포와 의념(疑念)으 로부터의 해방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의 깨달음이란 연기, 중도, 공을 확연 하게 인식하여 자신의 인격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 인 격의 구현은 구체적으로 자비(慈悲)로 드러난다. 더 나 아가 깨달음이란 의식의 전환을 통해서 자기를 재창조하 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개인 의 삶을 통해서는 자주 · 자율 · 자유로 나타나며, 사회적 삶을 통해서는 평등과 자비의 구현으로 나타난다. 깨달 음의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비판적 반성을 통해서 개인 과 사회를 이상적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으로, 불교에서 추구하는 보편적이며 궁극적인 가치인 것이다. 즉 불교 에서 윤리의 궁극적 목표는 깨달음이며, 깨달음은 최고 선(最高善) 그 자체인 것이다. (→ 구원 ; 돈오 점수 ; 무 명 ; 무지 ; 부처 ; 해탈) ※ 참고문헌 Edward Conze, Buddhist Scriptures, Harmondsworth, 1959/ Heinrich Dumoulin, Zen Buddhism : A History, vol. 1, New York, 1988/ Edward H. Johnston, The Buddhacarita, orActs ofthe Buddha, Delhi, 19721 Winston L. King, Theravada Meditation, University Park, Pa., 1980/ E. Lamotte, History of Indian Buddhism, Louvain, 1988/ William K. Mahony, 《ER》 5, pp. 107~113/ Hajime Nakamura, Gotama Buddha, Los Angeles and Tokyo, 1972/ Nanamoli, The Life of Buddha, Kandy, 1972/ Richard H. Robinson . Willard L. Johnson, The Buddhist Religion, Belmont, 1982/ Edward J. Thomas, The Life ofBuddha as Legend and History, London, 1969/ Henry Clark Warren, Buddhism in Translations, New York, 1976. 〔尹泳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