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 聖 - 會

〔라〕Ordo Fratrum Minorum S. Francisci Conventualium · 〔영〕Order of Friars Minor Conven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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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꼬미시움 간부 교육을 마치고(1961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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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꼬미시움 간부 교육을 마치고(1961년 7월 30일).


1223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탁발 수도 회인 프란치스코 수도 가족 가운데 하나.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라고도 한다. 프란치스코 수도 가족은 1회, 2회, 3 회로 대별되는데 1회는 남자 수도회로 프란치스코회 (OFM),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OFM conv.), 카푸친 프란 치스코회(OFM cap.)를 말하며 2회는 여자 수도회로 글라 라회(OSC)를 말한다. 3회는 재속 프란치스코회(OFS)를 가리키는데 프란치스코의 사도직 수도회도 이 3회에 속 한다. 또 정규 3회(TOS)가 있는데 이 회는 생활 봉헌회로 서 1회의 세 가족과 함께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지도한다. 〔약 사〕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와 일치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고자 하 였기 때문에 수도회의 명칭도 '작음' (minoritas)과 '형제 애' (fraternitas)를 강조하여 '작은 형제회' (Ordo Fratrum Minorum : 레오 13세의 칙서 에 의해 고정화 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이는 이름인 OFM과 구분하기 위하여 약어로 OMin.으로 씀)라 불렀다. 수도회의 창설 연대를 두 고 많은 학자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동료 제자들과 함 께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단순한 생활 규범을 구두 로 승인받은 1209년으로 보기도 하고, 오늘날까지 모든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의 규범이 되고 있는 현재의 회칙이 호노리오 3세에 의해 교황 문서로 승인된 1223년으로 보기도 한다. 꼰벤뚜알(coventualis)이라는 말은 '공동' , '집합' 이라 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함께 모여 사는 것' 을 의미한 다. 이 용어는 수도회 초기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운 '작은 형제회' (OMin.)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어 왔 는데, 교회 밖의 문헌상 최초의 표현은 1241년 1월 9일 자 공증 문서에 "domus conventuales' 라는 말로 프란치스 코회 수도자들의 거주지를 지칭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는 공식적으로 1250년 4월 5일 교황 인노천시오 4세 (1243~1254)가 칙서 를 통해 프란치스 코회 수도자들이 사목하는 교회를 꼰벤뚜알 성당과 꼰벤 뚜알이 아닌 성당으로 구분하고, 꼰벤뚜알 성당에서 미 사 봉헌, 성체를 모심, 종을 칠 권리 등의 특전을 허락할 때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교회를 돌보는 여러 신부들이 모여 사는 거주지에도 붙여졌으며 성 보나벤투라의 법령 에 따르면 적어도 13명의 형제가 살아야만 그 집을 꼰벤 뚜알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받은 이 명칭은 점차 보편 화되어 1517년 교황 레오 10세의 대칙서 에 의하여 엄격주의파(OFMObs., 오늘의 프란 치스코회)와 구별되면서 이 수도회의 고유 명칭이 되었 다.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가 교회의 필요 또는 시대의 요 청에 응답하는 생활 형식을 취함으로써 자연히 도시나 사회 속에서 일하며 공동 재산을 인정하는 데 반해, 엄격 주의파는 원시 회칙의 준수를 주장하였다. 또한 1528년 카푸친회도 교황 글레멘스 7세에 의해 엄격한 가난을 생 활화하는 관상 수도회로 엄격주의파에서 독립함으로써, 프란치스코회는 마침내 세 회로 나뉘어져 독자적으로 발 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회의 가난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갈등이 지금 까지 수도회가 쇄신되는 계기와 힘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 모원은 아시시에 있고 본원은 로마에 있으며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4,500명의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지형, 문화, 종족이 다른 온 세상에 흩어져 평 화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 동안 많은 성 인, 복자, 추기경, 총대주교 등이 배출되었는데 특히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우 리 어려운 세기의 수호자"로 불린 막시밀리안 콜베 신 부, 그리고 1986년 4월 13일에는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신부가 시성되었다. 〔영 성〕 꼰벤뚜알 작은 형제들의 영성은 그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공동체성' , '작음' , '형제애' 이다. 공동체 성은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함께 더불어 사는 정신으로 '협력' , '공동 책임성' 의 자세로 세계를 한 인류 가족으 로 묶어 주는 영성이다. 또한 수도회 역사를 통해 자연스 럽게 사용된 '꼰벤뚜알' 이란 말은 그 말의 형성 배경과 과정이 말해 주듯이 교회의 요청과 시대의 징표 요구에 응답하는 삶을 선택한 공동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의 고유한 카리스마이다.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작음' 은 영성적인 겸손함만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작은 자를 가리키는 용 어이다. 아무런 권력이나 재력, 명예, 특권을 바라지 않 는 정신으로 사회의 작은 자와 함께하는 영성이다. '형 제애' 는 이 수도회에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다. 프란치 스코 성인은 단지 자신의 수도회 형제만을 형제라고 부 르지 않았다. 그에게 형제란 동료 수도자를 포함하여 그 리스도 신자, 이단자들, 이교도들, 심지어는 모든 대자연 의 피조물까지 형제 자매로 불렀다. 따라서 이념, 종교, 언어, 민족을 뛰어넘어 형제애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인간애에 바탕을 둔 모든 피조물의 조화와 공존을 실현 하는 영성이다. 이 영성에 따라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는 교회와 사회가 요청하는 모든 일에 개방되어 있기에 사 도직의 종류에 중요성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카리 스마로 봉사하고 일하는 자세를 더 중시한다. 또한 사회 를 복음화하고 오늘날 문화와 생활 양식이 다른 세계 여 러 나라에 대한 선교 정신도 강조되고 있다. 〔한국 진출〕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의 한국 진출은 1958년,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중국의 공산화 때문에 로마로 강제 귀환당했던 파도바 관구의 프란치스 코 팔다니(Francisco Faldani, 범덕례) 신부가, 일본의 꼰벤 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에서 공부를 마치고 로마에 온 한 국인 허철(안드레아) 신부를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이 두 사제는 한국 선교에 대해 논의하였고 마침내 관구 차 원에서 두 사람의 파견이 결정되어 같은 해 10월 6일, 부산에 도착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처음 부산 범일동 본당의 사목을 시작으로 1959년 5 월 대구교구장의 요청으로 대구교구 범어동 본당 사목, 1960년 8월에는 부산 대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이듬해 2월에는 유치원 및 수도원을, 1962년에는 성당 을 완공하였다. 또 같은 해 대연동 난민 주택에 미감아 27명이 살기 시작하자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성 프란치 스코 보육원을 시작하였고 아울러 국립 부산 오륙도 나 환자 마을의 '상애원' 공소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1964 년 9월에는 대구에 화선 소신학교를 설립하여 이 땅의 성소 육성의 신기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1966년에 신축된 서울 한남동 수도원은 외국에서 부 임하는 본 수도회 회원들이 2년 간 한국어를 배우기 위 해 거주하는 숙소 및 수도원 연락소로 신축하였다. 그 후 1971년 8월부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수도회 신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는 한편, 1976~ 1979년에는 한국 외방 선교회 신학생들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피정의 집으로 전용하여 피정 지도, 세미 나, 연수회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외국인 아동을 위한 유치원이 있고 외국인들을 위한 국제 본당은 외국인 신 자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신학원은 1980년 1월부터 수도회 학생들의 교육 수도원으로서 수도회의 못자리 역 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부산에서 시작하여 대구, 서 울, 기장, 부평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발전한 수 도회는 현재 전교 사업(본당 7), 영성 · 교육 사업(피정의 집 및 수도자 양성), 사회 복지 사업(양로원 1, 장애자 재활원 1) 및 성소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직접 선교의 현장인 본당 사목으로는 현재 서울 한남 동 국제 본당, 인천 갈산동, 대구 범어동, 부산 대연동 · 기장 · 오륙도 본당에서 봉사하고 있으며 사회 복지 사업 으로는 1987년 1월부터 버림받은 할아버지들을 위한 양 로원으로 인천에서 '요셉의 집' 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 진출 초기부터 나환자를 위한 봉사에 각별한 관심 을 갖고 부산 오륙도 국립 나환자 마을인 상애원과 경남 일광의 삼덕 마을 그리고 부산 성 프란치스코의 집을 설 립, 운영하였다. 특히 성 프란치스코의 집에서는 매년 12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유치원 교육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 진출에 이르기까지 돌보아 주었다. 그러나 점차 그들의 성장으로 인원이 감소되면서 1994년부터는 이 사업을 지체 장애자를 위한 재활 사업으로 전환했다. 수련소가 있는 대구 공동체에는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가 창설한 국제적인 마리아 신심 단체인 성모의 기 사회 한국 본부가 있어 전국 16,000여 명의 성모 기사 회원들에게 매월 발간되는 성모 기사회지를 통해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북돋아 주고 있다. 그리고 1969 년에는 사회에 살면서 프란치스코회 정신에 따라 살아가 는 평신도들의 모임인 재속 형제회가 발족되어 현재 서 울 부산 · 대구 · 지장 · 포항 구미 등 6개 지역에서 600 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의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는 교회 안에서 가난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방법을 통하여 사랑의 형제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견되어 예수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그분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1995년 현재 수도 가족으로 외국인 사제 4명을 포함한 종신 서원자 31명, 유기 서원자 7명, 수련자 5명, 청원 자 8명, 지원자 7명 등 총 58명이 있다. 〔白仁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