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宣敎修道會

〔라〕Intitutum Missionum a Consolata · 〔영〕Consolata Missionaries

글자 크기
2
꼰솔라따의 성모 마리아.
1 / 6

꼰솔라따의 성모 마리아.


1901년 1월 29일에 복자 요셉 알라마노(Giuseppe Allamano, 1851~1926)가 창설한 수도회. '꼰솔라따' 는 위 로 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자인 성모의 도움에 힘입어 그 사랑을 전 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모원은 이탈리아 토리노(Torino) 한국 지원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2동 52-5번지 에 있다. 〔창설과 영성〕 이탈리아 카스텔누보에서 태어난 알라 마노 신부는 1873년 서품을 받은 후 신학생들의 지도와 은퇴 사제 휴양소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 후 1880년 토리노의 꼰솔라따 대성당 본당 신부로 임명되면서 시대 의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활동들, 즉 가톨릭 사회 활동 이나 노동자 조직과 사제에 협조하는 활동 등에 깊은 관 심과 지지를 보였다. 또한 가톨릭 언론 매체를 정립하고 자 일간지 <십자가>와 정기 간행물 《꼰솔라따》를 창간하 기도 하였다. 알라마노 신부는 점차 사도적 관심을 세계 로 넓히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01년 1월 29일 교구 자체의 신부 부족 등을 이유로 동료 신부들의 반대가 많 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수도회을 창설하고, 이듬해 처 음으로 신부 2명과 평신도 2명을 케냐로 파견하였고, 곧 이어 다른 선교사들도 파견하였다. 1910년에는 교황 비 오 10세의 격려에 힘입어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를 창설 하였다. 꼰솔라따 수도 가족들은 끊임없는 인내와 절대적인 신 뢰, 선교에 대한 열정과 성모로부터 배운 모성적 정신으 로 선교에 임하고 있다. 특별히 성숙된 신앙 공동체의 형 성, 다른 문화 종교와의 대화, 그리스도교적 해방과 정 의, 선교사들간의, 친교 그리고 선교 지역 사람들과 지역 교회에서의 친교 등에도 노력하고 있다. 1995년 현재 전세계 24개국에서 1,0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 고,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는 않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 에도 1,200여 명의 회원들이 있다. 〔한국 진출〕 1986년과 1987년 꼰솔라따 수도회 총장 과 참사회에서는 아시 아 진출을 위해 한국과 일본 및 필리핀을 방문 하였다. 순방 결과 당시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개최 등으로 활발한 움 직임을 보인 한국에서 복음 선포가 가능하다 고 판단하고 먼저 한국 진출을 결정하게 되었 다. 마침내 1988년 1 월 20일 이탈리아, 스 페인, 콜롬비아, 브라질 출신의 선교사 4명이 한국에 도 착, 인천교구의 도움으로 부천시 역곡동 상가 주택의 2 층에 자리를 잡고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지역 교회의 협조자로서 본당을 전담하기보다는 미처 본당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소외된 지역에서 활동을 전 개하였고, 신앙과 나눔의 국제화를 지향하며 여러 모임 을 주관하고 있다. 한 예로써 중고등 학생 중심의 '국경 없는 젊은이' 모임을 통해 학생들이 절약한 용돈과 바자 회의 이익금을 르완다, 우간다, 모잠비크 등 한국보다 가 난한 나라에 보내어 구체적인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또 한 대학생들과 미혼 남녀 중심의 모임도 결성하여 꼰솔 라따 수도회 본부 및 수도회의 다른 관구들과 자매 결연 을 맺어 신앙의 국제화 및 심화의 기회를 갖고 있다. 아 울러 젊은 부부들을 위한 모임도 주관하여 교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와 신앙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후원 회 원을 위한 미사와 모임을 매월 1회씩 갖고 있으며 후원 회 회지인 <꼰솔라따 회보>도 제작 배포하고 있다. 1995 년 현재 8명의 외국인 사제와 1명의 한국인 유기 서원자 가 하느님 위로의 손길을 펼치며 보다 가난한 이에게 보 다 큰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