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
〔스〕Cursillo · 〔영〕A litttle course
글자 크기
2권

1 / 6
한국 최초의 꾸르실리스따들.
그리스도교의 참된 정신과 생활을 사회 속에 구현하려 는 목적으로 3일 간 행해지는 '그리스 도교 신앙 안에서의 교육' (Cursillo de Cristianidad).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을 구축하기 위한 평신도 재 교육 운동이며, 일종의 신앙 부흥 운동 이다. 꾸르실료는 인종, 국적, 피부색, 교육 수준,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다 른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보통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3박 4일 동 안 한자리에 모여 15개 내외에 달하는 과목의 강의를 들으면서 서로 토론하고 기도하며 형제애적인 사랑을 체험해 나 가는 교육 방식을 취한다. 〔이념과 연혁〕 이 운동의 기본 이념 은 첫째 그리스도교 지도자를 양성하 고, 둘째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의 뼈대 를 심어 주며, 셋째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 생활을 쇄신하는 것이다. 이 운동 은 이상, 순종,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창설 이념으로 하여 종래 강조되던 계 명의 신심에서 은총의 신심으로의 전환 을 촉구하며, 동시에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제반 환경을 개선하고 사도직 활 동의 다양화로 개인의 성화와 교회의 쇄신에 활력소가 되고자 노력한다. 이 운동은 1940년대 스페인의 주교 후안 에르바스 (Juan Hervas)와 가톨릭 활동 단체 회장 에두아르도 보닌 에 의해 시작되었다. 에르바스 주교는 사목 활동을 통해 서 많은 지성인들이 고민하는 모습과 불우 청소년들의 비행과 범죄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영적 인 생활로 치유할 수 있을까를 모색하던 중 그는 이들을 다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교육이 필 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에르바스 주교는 가톨 릭 운동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을 뽑 아 방법을 연구하게 하였다. 이들이 성 야고보 사도의 무 덤이 있는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 로 성지 순례를 준비하면서, 순례 안내자들을 위한 단기 강습회를 실시한 것이 꾸르실료의 시초였다. 이것이 '진 보된 순례자의 꾸르실료' 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순례자 지도자의 꾸르실료' 가 실시되었다. 선발된 신부 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된 교구의 '지도자 학교 는 꾸르실 료마다 그 결과를 신학적 · 심리학적으로 면밀히 연구 · 검토하여 수정 · 보완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마침 내 1949년 1월 7일 제1 단계 '그리스도인 생활의 꾸르 실료' 가 탄생되었고 이것이 발전되어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제2 단계 꾸르실료가 완성되었다. '순례 지도자의 꾸르실료' 는 주로 가톨릭 운동에 관련된 요소들을 많이 채택한 반면, '그리스도인 생활의 꾸르실료' 는 광범위한 사도직과 관련된 요소들을 많이 도입하여 교회 운동의 차원으로 그 폭을 넓혔다. 원래 꾸르실료는 젊은 남자들 을 대상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나중에는 효과 면을 참작 하여 장년 남성들을 우선적으로 참여시키게 되었다. 여 성 꾸르실료는 수녀원의 요청으로 1951년에 수련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좋은 효과를 보게 되어, 1961년 이후부터는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꾸르실료는 많은 경 험과 수정을 거친 점진적인 발전 끝에 현재의 형태로 완 성되었다. 그 완성 시기는 1965년으로 잡고 있다. 1988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세계 꾸르실료 대회를 계기로, 교황청이 꾸르실료를 교회의 조직체로 공인하였 으므로 꾸르실료는 '가톨릭 국제 기구 에 가입하게 되었 다. 1990년에 열린 하와이 대회에서 꾸르실료는 신심 운동에서 조직체로 발전한 정신적 근거를 교황 요한 바 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인 <평신도 그리스도인>과 <교회 의 선교 사명>에 두기로 의결했다. 〔체 제〕 넓게 보면 꾸르실료는 예비 과정, 3일 간의 교 육 기간, 생활 속에서의 실행 과정 등 3단계로 진행된다. 제1 단계는 환경이 다른 사람들과 교제의 기회를 마련하 는 것이고, 제2 단계는 이들이 함께 꾸르실료를 갖게 되 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울뜨레야' 라 해서 별개의 명 칭이 붙고 꾸르실료를 거친 사람(꾸르실리스타)들의 모임 또는 그 산물이기에 꾸르실료의 과정과 분리시킬 수도 있다. 꾸르실료는 40명 가량의 남자 또는 여자들을 한 팀으로 구성하여 실시된다. 참가자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3일 동안 격리된 상황 안에서 생활하는데, 그 목적은 참 가자들이 서로를 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맛들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꾸르실료 그 룹은 보통 사제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되는데, 평신도들은 서로 인종, 교육적 배경, 경제 · 사회적 위치가 다른 사람 들로 구성된다. 꾸르실료 과정은 사제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된 팀에 의 해 지도된다. 꾸르실료는 항상 목요일 저녁에 시작해서 일요일 저녁에 끝난다. 3일 간의 과정에서 팀의 사제 회 원들은 엄격한 훈련으로 알려져 있는 5개의 묵상과 5개 의 토론을 참가자들에게 과제로 내준다. 팀의 평신도 회 원들은 이것들과 관련된 10개의 과제를 주는데, 사제들 이 맡았던 신학적 주제들을 세상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 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룹 은 다시 작은 단위로 나뉘어지는데, 이들은 각각의 과제 에 포함된 주제들을 토론하고 나중에 토론 결과를 발표 하게 된다. 꾸르실료 일과의 중심은 공동체 미사이고, 여기에 묵 주 기도, 성체 조배, 묵상, 십자가의 길 같은 다른 전통 적인 신심 행위들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꾸르실료 기간 내내 형제애와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시도가 계 속된다. 노래부르기와 재담 등을 즐기는 시간과 자유롭 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식사 시간이 그것이 다. 이 모든 노력들은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사람들과 서 로 깊이 사귀게 되고 서로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침묵은 첫날 저녁에만 지키도록 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괄목할 만한 영적 이익을 얻게 된다. 꾸르실료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서로 나눈다. 동시에 공 동체가 없는 그리스도교란 그리스도교라는 어휘에 모순 된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도록 한다. 참가자들은 이 두 개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공 동체로서의 그리스도교의 중요성을 꾸르실료 기간을 보 내면서 직접 체험한다. 이처럼 꾸르실료는 무엇보다도 '체험하게 하는 것' 에 역점을 둔다. 꾸르실료 기간 동안 참가자들끼리만 생활하는 것은 보다 바람직한 그리스도 교 공동체에 대한 강렬하고 집약된 체험을 위한 것이다. 〔한국 진출과 활동〕 1967년 주한 미 평화 봉사단장이 었던 케빈 오노넬과 필리핀에서 활동하다가 온 에드몬드 가이모가 한국에서 꾸르실료 운동을 창설하였다. 제1차 꾸르실료는 1967년 5월 4~7일 성수동 본당에서 21명 (신부 4, 평신도 17)이 영어로 수강하였으며, 제2차는 1967년 8월 17일 서울 정동 명도원에서 국내의 외국인 수강생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당시 지도 신부는 미국 에서 꾸르실료를 받고 돌아온 예수 고난회 박도세(Justin Bartoszek) 신부였고 회장은 도밍고(Melecio A. DomingJr.) 였다. 1967년 8월 24일 서울 정동 명도원에서, 유수철 (柳秀徹, 도미니코) 신부 지도로 이해남이 회장을 맡아 최초의 우리말 꾸르실료인 제3차 꾸료실료를 실시하였 다. 1969년 11월 부산 사랑의 집에서 남성 봉사자에 의 해 한국 최초의 여성 꾸르실료가 실시되었으며, 1971년 부터 서울대교구에서 권홍자 등 여성 봉사자에 의한 여 성 꾸르실료 교육이 실시되면서 전국적으로 여성 꾸르실 료가 보급되었다. 1970년 6월경부터 이 운동은 서울, 대구, 광주, 부산, 전주, 인천, 마산 등 7개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어, 서울 가톨릭 회관에서 전국의 꾸르실료 주간 및 지 도 신부와 추진자들이 모여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National Secretariat of Cursillo in Christianity Movement in Korea)를 창립했다. 창립 총회에서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주간 문창준이 회장, 광주대교구 주간 이상래와 부산교 구 주간 박우순이 부회장으로 선출되고, 총무에 송찬규, 재무에 서정열, 기획에 김정진이 각각 선임되었다. 주교 회의는 7월 2일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를 승인하고 임원 들도 그대로 임명하였다. 1970년 10월 24일 꾸르실리스타들의 재교육을 위한 일종의 단합 대회이자 전진 대회인 '울뜨레야' 가 한국에 서는 처음으로 개최되어 이후 거의 매년 열리게 되었다. '울뜨레야' 라는 말은 원래 "전진하자!", "힘을 내자!"라 는 뜻으로 스페인 서북방 산티아고에 있는 성 야고보 사 도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던 순례자들이 여행 중에 자주 외쳤던 말이다. 전국 울뜨레야는 꾸르실리스타들에게 3 박 4일 간의 꾸르실료의 감격을 재생시켜 주고, 동적인 그리스도교 활동을 지속할 것을 재다짐하게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 꾸르실료는 해외 교포들에게 도 보급되어 1980년 미국 시카고에서, 1981년에는 캐 나다 토론토에서 한국인 사제와 평신도 봉사자들에 의해 꾸르실료가 실시되었다. 1981년 10월 주교 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는 꾸르실 료 담당 주교를 임명하여 꾸르실료 운동의 체제를 완비 하는 동시에 교회 운동으로서의 비중도 높여 주었다. 그 러나 꾸르실료 운동의 실천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이 일 부에서 지적되면서 이 운동을 조직화하려는 경향을 지양 하고 토착화하여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 결과 1987년 5월 제10차 전국 울뜨레야 이후에는 담당 주교 제도가 폐지되었다. 1988년 서울대교구에서는 프로테스 탄트 목사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꾸르실료를 실시하여 프로테스탄트에서도 가톨릭 꾸르실료 운동이 전파되었 다. 현재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는 트레스 디아스 (Tres dias) , '비다 누에바' (Vida Nueva) 등의 이름으로 꾸르실 료를 실시하고 있다. (← 쿠르실료) ※ 참고문헌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꾸르실료 二十年史》, 가톨 릭출판사, 1987/ 허종렬, <한국 가톨릭 교회의 꾸르실료 운동>, 韓 國 가톨릭 文化活動과 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pp. 407~423/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pp. 807~808/ 《가톨릭 사전》. 〔許鍾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