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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스스로를 규정하는 인간의 능력. 〔개 념〕 역사적으로 의지라는 개념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측면 때문에 엇갈렸다. 그래 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의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현재 도 의지라는 개념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선택 · 추구 · 자기 규정 또는 자기 결단을 포함하는 의미 로 규정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
응용 윤리학의 한 분야로 의료 분야에서 일어나는 여 러 가지 윤리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 1960년대 이후 뛰어난 의학의 발전으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였으나 신체 기관의 이식 · 임신 중절· 유전 공학 · 생명 연장의 기술 발전에서 오는 여러 윤리 적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삶의 참다운 의미와 관련 된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함에 따라 의학 윤리에
중국에서 1898년부터 1901년까지 일어났던 농민 위 주의 자발적인 반교(反敎) · 반제(反帝) 운동. 의화권(義 和拳)으로 시작한 의화단은 초기에는 반청(反淸)의 색채 가 짙었으나, 청국 정부의 개입 이후로는 부청멸양(扶淸 滅洋)의 구호를 외치며, 반교 · 반제 투쟁을 전개한 운동이다. 〔의화권의 반교 투쟁과 의화단의 형성〕 1898년 10월 (光緒 2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사람이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 침. 루터(M. Luther, 1483~1546)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때 근간으로 삼았던 교리로, 그는 인간이 '오직 성서와 은총과 믿음만으로' (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 구 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성녀 조 막달레나의 모친이 다. 시골에 살면서 천주교를 알고 있었으나 14세 때에 외교인과 결혼하면서 교리와 계명을 철저히 지킬 수 없 었다. 그런데 점차 남편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죽을 때쯤 에는 대세(代洗)를 받게 하였다. 남편이 죽은 후 천주교 를 싫어하는 시집 식구들과 같이 살게 되자, 그녀는 자녀 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

성녀.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성녀 이정희 (李貞喜, 바르바라) · 이영희(李榮喜, 막달레나)의 조카 이다. 경기도 시흥 봉천(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양반 집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서울로 와서 이모인 이영희 · 이정희를 의지하고 살았다. 1839 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15세의 어린 나이 로 이모들과
① 이 아가타(1784~1839) :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성인 이호영(베드로)의 누나.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외교인과 결혼했으나 3년 만에 남편을 잃고 친정으로 돌아와 모친 · 동생과 함께 입교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서울로 이주한 아가타는 1835년 2월 한강변 '무쇠막' 에서 동생 이호영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포청

조선 후기 정조 연간의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 호는 금대(錦帶) · 정헌(貞軒), 자(字)는 정조(廷藻)이다. 본 관은 여주(驪州)로서, 원래 여주 이씨가 대대로 거주했 던 서울 서대문 근처인 정동(舊貞陵港)에서 태어나고 성 장하였다. 조선 후기 경기도 지역 남인이자 대실학자인 성호 이익 집안의 학통을 이은 정산 이병휴(貞山 李秉 休)와 혜환 이용휴(惠寰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가타. 서울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8세에 결혼하였다가 3년 후에 과부가 되었다. 이 시기 천주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입교한 뒤 유 파치피코(본명은 余恒德)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이후 시어머니와 집안의 다른 식구 2명을 입 교시켰다. 1846년 6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자 현석문(玄錫

주교. 제2대 부산교구장. 세례명은 가브리엘. 1924년 2월 29일 경북 영천에서 이능호(李能皓, 가시미로)와 최순이(崔順伊, 루피나)의 3남 4녀 중 3남으로 출생. 1938년 영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 상업학교 을조를 거쳐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재학 하였으나, 1945년에 학교가 폐교되고 일제에 의하여 일 본군에 징병되어 광복이

순교자. 세례명은 가롤로. 아명(兒名)은 오희(五喜). . 본관은 전주(全州). 이윤하(李潤夏)의 장남이며, 권철신 (權哲身, 암브로시오)의 생질,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의 오빠이다. 1780년(정조 4)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 의 가문은 경녕군(敬寧君)이라는 칭호로 반열(班列)에 속하였으며 남인(南人)의 지도층에 있었다. 1791년(정 조 15)에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1895년 3월 27일에 출생하여 1911년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 해 4월 8일 대구 대목구가 설정되고, 초대 대 목구장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노력으로 1941년 10월 3일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개교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와 공부를 마쳤다. 1922년 9월 23일 계산 (桂山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전주(全州). 이윤하 (李潤夏)의 차남이며, 이경도(李景陶, 가롤로)와 이순이 (李順伊, 루갈다)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자 와 같이 교육을 받았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1801 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형과 누나가 순교한 뒤 집안이 완전히 파산하였다. 과부가 된 어머니와 형수와 셋이 서울에서 몹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가타. 시골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고자(鼓子)와 결혼했다가,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에게 청하여 그 결혼이 무효임을 인정받았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권진이(權 珍伊, 아가타)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 1839년 7월 17일 에 권진이 · 한영이(韓榮伊, 막달레나) · 여종 1명과 함 께 체포되었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셀모. 1940년 3월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를 졸업한 후 덕원 신학교 고등과에 진학하였으며, 1947년 12월 27일 평양 관후 리 지하 성당에서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아 주교관에서 휴양하면서 조문국(趙文國, 바오로) 신부가 사목하던 기림리 본당 신자들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레오. 1918년 4월 11일 서울 중구 저동에서 이기헌(李驥憲, 바오로)과 노효갑 (盧孝甲, 마리아)의 5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계성보 통학교와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상업학교 을조(乙組)를 마치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연령 미달로 동기들보다 늦게 1941년 11월 21일 라리보(A. Larribeau, 元亨根)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한. 일명 겸삼. 성 인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의 동생. 본관은 광주 (廣州). 명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22세 때 형 이 광헌 가족과 함께 입교하여 교회 일에 매우 헌신적이며 열심이었다. 그리하여 입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 유진길 (劉進吉, 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