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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광무 3) 4월 충남 강경에서 일어난 교안(敎案). 나바위 본당〔羅岩本堂, 현 華山本堂]측과 주민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프랑스 공사관과 외부가 개입함으로써 외교 문제로 해결되었다. 〔발 단〕 사건은 1899년 4월 강경에 거주하는 천주교 신자 김치문(金致文)이 외교인 조흥도(趙興道)에게 소금을 산 뒤 그 값을 치르지 못해 시비가 일어난 사소한
7품 중의 제2품급으로, 성당 안에서 성경과 기도문을 읽을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해 주어지는 품. (→ 칠품)
평양교구 소속이던 침묵의 본당. 1933년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설립되었고, 1949년 폐쇄되었다. 당시 강계군과 희천군(熙川郡) 일대를 관할했으며, 소속 공소로는 만포(滿浦, 만포읍), 별하(別河, 城干面), 전천(前川, 전천면), 개고(价古, 희천군 북면) 등이 있었다. 강계 지방은 메리놀회의 캐시디(J. Cassidy, 姜) 신부에

1980년 5월 3일 개원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 중의 하나. 서울 서초구 반포동 505 소재. 이 병원 건립은 1976년 가톨릭 중앙 의료원에서 수립한 '지역 사회 종합 의학 센터' 계획에 포함되어 추진되었다. 본래 의료원에서는 이 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여의도에 부지를 마련하였으나, 그 장소가 부적당하다고 판단하여 1976년 12월 반포동 일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르코. 서울 출생. 한국에서 세 번째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고모 강 마리아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20여 세까지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 블랑(Blanc, 白) 주교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종현(鐘峴)의 한한학교(韓漢學校)에서 공부하던 중 1883년 4명의 신학생과 함께 페낭(Pinang) 신학

대전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1948년 성신대학(聖神大學, 현 가톨릭대학교)을 졸업하고 그 해 12월 18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대전 대흥동(大興洞) 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하였고, 1949년 4월 신설 홍성(洪城) 본당에 부임하여 본당의 기초 작업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일어난 6 · 25 동란으로 8월 11일 북한 공
강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네딕시오(benedictio)는 '좋은 말을 하다' , '좋게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 베네디체레(benedicere)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고전 라틴 문학과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에서의 강복〕 '베네디체레' 의 의미는 첫째, '좋은 말을 하다' , '누군가에 대해 잘 말하다' , '찬미 · 찬양하다' , '받은 선물에 대해

육화의 옛말. (⇨ 육화)
평양교구 소속이던 침묵의 본당.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소재. 1935년 유서 깊은 광너울 공소(荷次面 兔山里)를 중심으로 마산 본당(馬山本堂)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1944년 11월 폐쇄되었다. 관할 지역은 강서군의 서남 지역 8개 면이었고, 광너울 공소를 비롯하여 함종리(咸從里), 기양리(岐陽里), 송호리(松湖里), 가흥리(佳興里), 고학리(古鶴里)

조선교구 신부.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충청도 홍산(鴻山)에서 태어났다. 충청도 내포(內浦)에 살았던 외조부(外祖父) 신베드로는 의술(醫術)이 뛰어났으며 홍주에 살던 친구 손 베드로에게서 문교(聞敎)하여 영세한 후 각처로 다니며 전교하다가 병인(丙寅)박해 때 홍주읍 포졸들에게 잡혀 해미(海美)에서 85세로 치명하였으며, 외숙인 신 아우구스티노도 23세 때 해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평양(平壤)에서 태어났다. 1931년 5월 30일 종현(鐘峴, 현 명동)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35년 7월 평남 중화(中和) 본당에 부임하여 전임 기본스(Gibbons, 盧) 신부가 추진하던 빈민 아동 교육 기관인 성심(聖心)학원을 개설하여 문맹 퇴치 사업에 앞장섰으며, 신자들과 지방민들의 성원으로 유치원

순교자. 한국 최초의 여성 회장. 세례명은 골롬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향반(鄕狂) 집안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통찰력과 곧고 용감한 마음을 지녔다. 10여 세가 되었을 때 불교에 뜻을 두었으나 얼마 아니 가서 이를 포기하였다. 일찍이 충청도 덕산(德山)에 살고 있던 홍지영(洪芝榮)에게 후처로 시집갔으나 남편의 성품이 용렬하여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세례명은 베드로. 주교 좌우명은 "네 생명 주께 맡기고 그를 바라라." 194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63년 경기중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9년 동경 죠오찌대학(上智大學)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 이듬해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그는 로마 울바노대학에 유학하여 1973년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전주교구 초대 몬시놀. 본관 진주(晋州). 1917년 8월 24일 전북 익산 나바위에서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았던 강한태(美漢泰, 요한)의 장남으로 태어나 1925년 용안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본당 신부 카다스(J. Cadars)의 권고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예과 1년을 마친 후, 1932년 서울

신흥 종교의 하나인 증산교(甑山敎)의 창시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 일반적으로 '증산' 또는 '강증산' 으로 불린다. 흥주(興周)의 아들로 1871년(고종 8) 전라북도 고부(古阜)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뒤 전라북도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願寺)에 들어가 도통을 연구하던 중 깨달음을 얻었다고 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