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0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韓國天主教主教會議12

한국의 모든 주교들이 모여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를 공동으로 조정하고 수행하는 최고 의결 기구. 주교들은 교황과 또 그를 으뜸으로 하는 주교단 안에 서 다른 주교들과 친교를 이루며 하느님의 백성을 가르 치고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까지 주교 회의는 단지 주교단의 합의체 정신으로 공동 사목을 수행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韓國天主教中央協議會12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의 사무국 기능을 하면서 교구 간 연락 사무 업무를 담당하고 교회 내에서 필요한 성서, 성가책, 교리서와 전례서 등을 출판하는 역할을 하는, 국 가 법률에 따라 등록된 사단 법인체. 1947년 8월 교황 비오 12세(1939~1958)에 의해 초대 주한 교황 사절로 임명된 번(J.P. Byrne, 方溢恩) 신부는 전국적인 차원의 교회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韓國天主教平信徒使徒職協議會12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가운데 하나.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 가톨릭 회관 5층 510호 소재. 설립 목 적은 복음적 사도 정신으로 회원 상호 간의 협력을 도모 하고 경험과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각 교구 평신도 사도 직 협의회와 단체들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데에 있다. 〔설 립〕 '평신도'를 뜻하는 라틴어 '라이쿠스' (laicus) 는 그리스어 '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I. 선교사들에 의해 선도된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Ⅱ. 일본인의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Ⅲ. 한국인의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韓國天主教會史研究12

교회사는 신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이라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예수 그리 스도께서 친히 조직한 것이지만, 더불어 하느님과 인간 이 만나는 현실적인 조직으로서 역사적 기능을 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사 연구는 하느님의 측면을 보다 중시하는 신학적인 의식에 기반을 둔 연구와, 역사학적 의식에 치중한 연구의 두 측면에서 접근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韓國幸福 - 家庭運動12

평신도 전국 사도직 단체 중의 하나. 모든 가정의 성화 와 복지를 증진하는 데 설립 목적이 있으며, 구체적으로 는 가정 도덕, 곧 부부의 사랑과 존경, 부부의 화목과 신 의와 대화,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과 양해, 자녀들의 영 신적 · 도덕적 · 세속적인 교육, 가정에서의 기도 생활 권 장과 가정 생활의 은총과 축복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 1975년 5월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
한국교회사연구소 韓國敎會史研究所 [영]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12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한국 교회사 연구 기관. 서울 중구 저동 1가 2-3번지 소재. 1964년 8월 17일, 한국 교회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과 그 지식을 보급하 며 교회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함은 물론, 한 국학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 시에는 가톨릭대학 부설 기관으로 혜화동 대신학교에 위 치하였다가 1967년에

한국교회사연구소 韓國敎會史研究所 [영]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한기근 (1867/1868~1939)韓基根12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 바오로. 1868년 8월 4일(또 는 1867년 7월 12일) 경기도 양지(陽智) 추계(秋溪)에서 한 안드레아와 방 바르바라의 아들로 출생. 3세 때 모친 을, 9세 때 부친을 여원 후 서울에 사는 백부 한영직(베 드로)의 집에 살면서 글을 배웠다. 백부의 권고로 교리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883년 8월 15일에 푸아넬(V.Poi

한기근 (1867/1868~1939)
한논 본당 (⇨ 서귀포 본당)- 本堂12
한대사 (⇨ 대사)限大赦12
한덕운 (1752~1802)韓德運12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1790년 10월(음) 윤지충(尹持忠 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윤지충이 이듬 해에 일어난 신해박해(辛亥迫害)로 순교한 후에도 열심 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 주문모(周文謨, 야고 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성사의 은 총을 받기 위해 주 신부를

한덕운 (1752~1802)
한들 본당- 本堂12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 소재. 1977년 진안 본당의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85년 1월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모 무염 시태. 〔역대 신부〕 초대 소순형(蘇淳炯) 베르나르도(1977. 12~1982.1), 2대 범영배(范永培) 라파엘(1982. 1~1985. 1). 한들 지역은 진안과 장수를 오가는 길목이다. 이에 초 기

한들 본당
한림 본당翰林本堂12

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대림리 1814번지 소재. 1954년 4월 1일 한림 공소에서 본당으 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관 할 구역은 한림읍과 애월읍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애월 공소 1개소. 〔교 세〕 1954년 50명, 1965년 2,099명, 1970년 1,949명, 1975년 1,707명, 1980년

한림 본당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 運動本部12

서울에서 개최된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1989)를 준 비하면서 성체성사의 뜻을 실제 삶과 연결시켜 살아가도 록 하기 위하여 전개하기 시작한 운동.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고 현양함으로써 모든 인류가 평화를 이룩하 고, 회심과 나눔으로 형제적 일치를 이루는 데 이바지하 며, 나아가 자연계의 모든 피조물과도 화합하여 하느님 의 뜻에 따라 세상을 새롭게 재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
한무숙 (1918~1993)韓戊淑12

작가. 호는 향정(香庭). 세례명은 글라라. 1918년 10월 25일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에서 한석명 (韓錫命)과 장숙명(張淑命)의 차녀로 출생하였다. 1926 년에 베를린 세계 만국 아동 그림 전시회에 입상하는 등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1931년부터 그림 공부를 시 작하여 일본인 화가에게 사사하였다. 부산고등여학교(현 부산여자고등학교) 재학 시 폐결

한불 교섭사韓佛交涉史12

한국과 프랑스의 공식적인 교섭은 1886년 한불 수호 통상 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종 교를 통한 비공식적인 접촉은 그 이전부터 있어 왔다. 그 리고 중국의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일찍부터 조선이 프랑스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1235년 몽고군이 유럽 원 정을 결의한 뒤 러시아 · 폴란드 · 헝가리를 공격하자 1245년 교황 인노첸시오 4

한불 교섭사
한불 수호 통상 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12

1886년 6월 4일에 조인된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수호 통상 조약. 전문 13관(款)과 부속 통상장정(通商章程) , 세칙(稅則), 세칙장정(稅則章程), 선후속조(善後續條)로 구성되어 있으며, 치외법권(治外法權) 영사 재판권(領 事裁判制度), 관세의 편무적(片務的) 규정, 최혜국 조관 (最惠國條款) 등이 규정된 불평등 조약이다. 그러나 다 른 조약과는 달리

한불 수호 통상 조약
한성임 (1814~1868)韓成任12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바라. 동정녀. 1831년부터 정 하상(丁夏祥, 바오로)의 누이인 정정혜(丁情惠 엘리사 벳)에게 교리를 배웠고, 유 파치피코(余恒德) 신부를 비 롯하여 모방(P.P. Maubant, 羅伯多祿) 신부, 샤스탕(J.H. Chastan, 鄭牙各伯) 신부, 페레올(J.-J.-J.-B. Ferréol, 高) 주 교 등 조선에 입국한 거의 모든

한성희 (1937~1981)韓星熙12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디오니시오. 1937년 9월 22일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가담리 467에서 한성순과 이필성(데레사)의 아들로 출생. 1962년 12월 가톨릭대 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12월 21일 대구 계산동 주교 좌 성당에서 서정길(徐正吉, 요한) 대주교의 주례로 사 제 서품을 받았다. 삼덕동과 고성동 본당의 보좌 신부를 역임한 후 1964년

한신애 (? ~1801)韓新愛12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아가타. 충청도 보령에서 양반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장성한 뒤 조시종 (趙時鍾)의 후처로 들어가 살았다. 그러다가 1795~ 1796년경 여회장 강완숙(姜完淑, 골롬바)의 전교로 천 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전처의 딸인 조혜 의(趙惠義)와 함께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한신애는 이후 강완숙의 집을

한신애 (? ~1801)
한아기 (1792~1839)韓阿只12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 례명은 바르바라. 당시의 교우들 사이에는 '순길의 모 친' 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모친에 게 교리를 배웠으나 열심히 수계하지 않았으며 결혼도 비신자와 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친정에 들렀다가 김업 이(金業伊, 막달레나)를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운 뒤로는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