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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치 정권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에 대항해 결성된 독일 복음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의 저항 운동 성격의 모임.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그에 따른 독일 제국의 파멸, 민족 자존심의 상실, 570만 명에 달한 실업자와 경제 파탄 등 파국적인 상황에서 출현한 히틀러(Adolf Hitler)는 강력한 국가 재건 정책을 통해 독일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교회도 역시
사적인 참회의 기도에서 발전되어 공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기도. 가톨릭 주요 기도문 중의 하나.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에 의해 미사 경본에 삽입된 이 기도는 원래 사제의 사죄경과 함께 고해성사를 위한 기도문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받기 전, 고해를 준비하면서 이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한다. 병자의 도유와 죽은

①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99 소재. 1893년에 설립된 되재 본당〔升峙本堂〕의 후신으로 주보는 성모 영보. 되재 본당은 이후 1940년대의 수청 본당(水淸本堂) 시기를 거쳐 일시 폐지되었다가 1958년 4월 25일 고산 본당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관할 구역은 완주군 고산면 일부와 동상면 · 봉동읍 · 운주면 · 화산면 ·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253 소재. 1987년 10월 26일 반야월 · 경산 본당의 일부 구역을 분할하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루치아 박희순. 관할 구역은 고산1동(신매동, 매호동, 노변동 등), 고산2동 (시지동, 내환동, 삼덕동, 가천동 등). 〔교 세〕 1987년 250여명, 1989년 1,006명, 1993년 1,720명.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376-5 소재. 1970년 7월 20일 세류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은 고색동, 오목천동, 탑동 일부, 화성군 매송면 · 봉담면 · 태안읍 일부 등이며, 소속 공소로는 와우리(봉담면 와우리), 기안리(태안읍 기안리), 어천리(매송면 어천리) 등 3개소가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 176-1 소재. 1939년 5월 14일 황리 본당(黃里本堂, 현 경남 통영군 광도면)이 고성으로 이전되어 설립된 본당으로, 주보는 대천사 성 미카엘. 소속 공소로는 황리, 대가(大可, 고성군 대가면), 배둔(背屯, 고성군 회화면), 상리(上里, 고성군 상리면), 마암(馬岩, 고성군 마암면) 등 5개소가 있으

순교자. (→ 고성대와 고성운)
형제 순교자. 일명 '성일' 이라고도 했던 고성대의 세례명은 베드로, '여빈' 이라고도 했던 고성운의 세례명은 요셉. 누가 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의 《비망기》(備忘記)에는 고성운이 형,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는 고성대가 형, 관변측 기록인 《일성록》(日省錄)에는 고성대가 먼저 나온다. 덕산(德山) 별암(현 禮山郡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북구 고성동 3가 8 소재. 1958년 10월 28일 계산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 설립 당시의 명칭은 '칠성동 본당' 이었으나, 1979년 4월 행정 구역명 변경 조치로 '고성동 본당' 으로 개칭되었다. 관할 구역은 고성동 및 노원동 1 · 3가, 원대동 1 · 3가, 칠성동 2가 일부. 〔교

거품 내지는 경계(境界)처럼 무엇인가 주변에 덧붙여지는 것을 의미하는 튜튼족의 말 '림보' (limbo)에서 유래한다. 가톨릭 신학에 의하면 이미 죽은 사람들 중에서 천국이나 지옥 또는 연옥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장소를 말한다. 고성소는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리스도가 강생(降生)하여 이 세상을 구할 때까지 구약의 성조(聖祖)들이

순교자. (⇨ 고성대와 고성운)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르바라. 성인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의 처.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순교자인 고광성(高光晟)의 딸. 서울에서 태어났다. 4세 때 박해로 부친을 여의고 모친과 함께 열심히 수계하며 생활했고 18세 때 교우인 박종원과 결혼, 3남매를 두고 가정을 잘 돌보아 교우들로부터 모범 가정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또한
순교자. (⇨ 고스마와 다미아노)
일본에서 순교한 한국인 부자(父子). 일본 교회의 205위 복자 중의 한 사람. 일본의 26성인 중에 포함된 다케야와는 다른 인물이다. 고스마 다케야(1582?~1619) : 고스마는 조선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당시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다. 그 후 예수회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그는 나가사키 근처 구루미(久留米)에 사
순교자. 축일은 9월 27일. 쌍둥이 형제로서 일찍이 사도 바울로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소아시아의 칠리치아 주 에게아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가 되어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환자들과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는데, 의료 기술이 남달리 뛰어나 명의라는 칭송을 들었다. 특히 약으로 되지 않는 병은 간절한 기도로

덕원 면속구(德源免屬區) 소속 침묵의 본당. 함남 고원군 고원읍 신정리(新井里) 소재. 1933년 덕원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이해 10월 28일 초대 주임으로 콜러(E. Kohler, 景) 신부가 부임 하였다. 이 지역에는 이미 원산 본당 시절인 1910년대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여기에 20여 명의 신자가 있었으나 얼마 안되어 폐쇄되었다. 그러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