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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동구 신암1동 603-10소재. 1945년 12월 20일 대구(현 계산동) 본당 관할 동상(東上) 공소에서 준본당이 되었다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신암1 · 3동전 지역과 신암4동 일부 지역. 〔교 세〕 1956년 226명,1964년 3,619명, 1972년 3,800명, 1976년 5,3

교회의 신앙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 또는 이를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임을 신자들이 고백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전례 안에서 주일과 대축일과 성대한 축제의 미사 중에 강론과 묵상이 끝난 뒤 모두 일어나서 신앙 고백문을 외우는 행위를 의미한다. 〔용어와 개념〕 신앙의 공언(公言)이라는 뜻의 이 말은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호몰로기아' (ὁμολογία)를
도덕과 신앙에 대한 교의를 보호하는 책임을 수행하는 교황청의 9개 성(省) 가운데 하나. 〔기원과 변천〕 신앙 교리성의 기원은 13세기 교황 인노천시오 3세(1198~1216)가 이단을 조사하기 위하여 교황청 내에 "로마 전세계 감찰성"(Romanae Universalis Inqui-sitionis Congregatio)을 설립하고 감찰관(inquisito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전국 위원회 중의 하나.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643-1번지 소재. 1968년 주교 회의 추계 정기 총회의 결의에 따라 그 해 10월 23일 설립되었는데, 설립 목적은 전체 주교 회의와 개별 주교들이 신앙을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고, 가르침의 전달을 촉진시키는것에 있다. 신앙 교리위원회는 1967년 6월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주
어떤 특정한 직무나 품위 및 책임을 맡게 되는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정신에 충실하겠다는 내용으로 하는 선서. 현행 《교회법전》 제3권 '교회의 교도 임무' 의 맨 마지막 조문인 833조에는 어떤 경우에 누가 신앙 선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신앙 선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 예를 들어 신앙인들이 함축적으로나마 신앙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응답. 인간과 하느님이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나아가 일치하기 위하여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자세이다. 사도 신경에서 "저는 믿나이다" 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결정짓는 말이다. 신앙은 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며, 그리스도인이 취할 기본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면서 행복을 추구하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 내용이 사도들의 전승에 따라 영감에 의해 권위 있게 기록된 그리스도교의 경전. 총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I . 명칭과 의미 및 언어 〔명칭과 의미〕 그리스도교의 경전 곧 성서는 크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구분되는데, 구약(옛 계약)과 신약(새로운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맺어진 계약으로 나누어진다.

대전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58년 8월 12일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나 대건신학대학(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과와 연구과를 졸업한 후 1982년 2월 25일 사제 서품을 받고, 대흥동(大興洞) 본당 보좌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그 해 11월 1일 대천(大川) 본당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중 교통 사고로 이튿날 오전 사망하고 말았다. 장례 미사는
1875년 9월 8일 얀센(Arnold Janssen, 1837~1909) 신부가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네덜란드 슈타일(Steyl)에서 설립한 선교 수도회. 총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지부는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3동 1-1161번지에 있다. 한국 진출 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던 '신언회' 라는 명칭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해 왔으나, 이 명칭이 수도회의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양천구 신월4동 436-1소재. 1984년 8월 1일 신정동(新停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관할 구역은 신월2 · 4 · 6 · 7동 전 지역이고, 관할 공소는 연의(延義)골 1개소. 〔교 세〕 1984년 1,883명, 1988년 5,163명, 1993년 6,836명, 1999년 6,557명. 〔역대 신부〕 초대 송
1801년(純祖 1)에 일어난 조선 최초의 대대적이고 면적인 박해. 천주교 4대 박해 가운데 하나로, 1801년 1월 10일(음) 대왕 대비(大王大妃) 정순왕후(貞純王后) 김 씨의 금교령(禁敎令)으로 시작되어 12월 22일(음)에 반포한 (斥邪綸音)으로 끝났다. 〔배 경〕 신유박해가 발생하게 된 요인은 우선 사회적 배경에서 찾아야 한다. 조상 제사를 거부하

연길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06년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간도성 팔도구(八道溝) 인근의 하평(下坪)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덕원 신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3월 21일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 · 김보용(金寶容, 루도비코)과 함께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출신 본당인 팔도구 본당의 주임 신부로 사목 생활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