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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가 상주하지는 않으나 본당에서 소속 신자 집단으로 인정한 교우촌 또는 교우들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소도시의 한 장소. 본당 신부는 관할 공소들을 해마다 적어도 봄, 가을에 두 번 방문하고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어야 하였다. 성 사, 특히 고해성사를 주거나 받는다는 뜻에서 이 방문을 판공(判功)이라 불렀고 가을에 하는 것을 '가을 판공' 으 로, 봄

공소에서 미사 대신 거행되는 전례.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이나 축일에 그 지역 신자들 이 모여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이 예절을 거행한다. 종 래에는 이를 '공소를 본다' 거나 '첨례(瞻禮)를 바친다'고 표현하였다. 한국 교회에서는 초기 교회 때부터 공소 중심으로 전 례가 행하여져 왔으므로 공소 예절이 매우 중시되었으 며, 1864년 4권
공소 신자들이 공소 유지를 위해 내던 헌금. 한국 교회 초기부터 시행되어 온 제도로 본당이 확산되어 가면 서 헌금 제도로 정착되었다. 초기의 공소전은 봄 · 가을 판공(判功) 때나 필요할 경우 부정기적으로 봉헌되었으 며, 물품의 경우에는 당시의 화폐로 계산되는 것이 통례 였다. 신자들은 이를 정성껏 바쳐야 했으며, 이렇게 모 아진 공소전은 공소 회장 또는
성체께 대한 존경과 영성체를 위한 마음의 준비로 적어도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 공 복재(空腹齋)라고도 한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3세기까 지 공심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아가페(agape)라고 하는 공동 식사 후에 영성체를 하였 다. 그러나 4세기에 접어들면서 영성체 전에 음식물을 금하는 관습이 거의 보편화되었다

신앙, 윤리, 규범 등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는 주교들 의 회합. 콘칠리움(Concilinum)이란 용어는 교회 밖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주교 들의 회합, 그러한 회합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지칭한다. 시노두스(συνοδς)도 세계 공의회(Concilium oecumeni-cum) 를 말할 때 함께 사용된다. 〔종 류〕 교회사에서

공의회의 결정에 교황이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 14세기에 형성되어 15세기에 이른바 개혁 공의회에서 적용 · 실천되기에 이른다. 공의회 우위설은 일반적으로 14세기, 파도바의 마르실리오(Masilius da Padova, +1342) 와 오캄(William von Ockham, +1349)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기본 사상은 이미 12~13

〔목적과 문제 제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이 항 목의 목적이다. 한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 날 무렵부터 양적인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 고, 교회의 모습도 전에 비하여 현저하게 변하였다. 교회 의 성장이 공의회의 결과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워도, 한 국 교회 모습의 변화는 상당한

기원전 6세기 고대 중국에서 최초로 독자적 사고 체계 를 형성하여 그 후 중국 문화의 뼈대를 이루어 온 유가 (儒家) 사상의 맥을 시작한 인물. 우리 나라에도 삼국 시 대에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論語)가 전래되어 기본 교 과서로 정착되면서 공자의 가르침은 한국인들의 인간관 과 사회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자의 생애와 사상 및 제자들에 대해서 가장 믿을

'notarius' 란 말은 '문자' 혹은 '기호' 라는 라틴어 nota' 에서 유래되었는데 문서를 기록, 작성하는 서기로 서의 의미와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그 문서가 공신력을 지니게 되는 공증관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현 행 교회법에서 공증관은 모든 기록 문서, 재판 기록, 특 정 안건 및 업무의 기록 문서 등에 그 서명이 공신력을 갖게 되는 사람을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인들의 축일이 매우 드물었 기 때문에 각 축일은 고유한 전례(기도문 등) 형태들을 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인 축일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제 각기 고유한 기도 형태들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 고 이처럼 고유 기도 양식들을 갖지 않는 성인 그룹을 위한 미사를 성인 공통 미사라 한다. 처음에는 순교자들, 증거자들, 동정녀들을 위한 공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691 소 재. 1966년 12월 14일 당산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 으며, 주보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공 항동과 방화1 · 2동 지역. 〔교 세〕 1973년 939명, 1978 년 1,874명, 1982년 2,683명, 1987년 5,747명, 1989 년 6,136명, 1993년 5,766

자연적인 재해나 인간의 행위로 물, 공기, 토양 등 공 동으로 사용하는 매개물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간접 또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경우를 말한다. 피해의 범 위로 구분하면, 공해는 미치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피해 대상이 특정한 대상에 한정되는 사해(私害)와 구별된다. 《국어 대사전》(이회승 편저, 1982년 8판)에서는 공해를 "공 공에 미치는 해.

1949년 10월 7일 멕시코 주교단에 의해 창설된 선교 단체. 주보는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세계 각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 사업에 일생을 바친다는 것을 선 교회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1953년 인류 복음화성(포교 성성)으로부터 회칙을 인준받고, 1955년부터 그 지도 관 할 아래 선교사를 파견하여 현재까지 한국 · 일본 · 홍 콩 · 케냐 ·

1531년 12월 9일,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 1519년 마야 · 아즈텍 문명이 융성하던 멕시코에 스페 인의 군대가 들어왔다. 당시 멕시코는 이미 유럽과 비견 될 만한 고도의 문명 국가였지만 종교만은 여러 형태로 나누어져 있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을 죽여 바치는 미신적인 제사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었다. 때문에 선교 사들이 가톨릭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