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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본당國際本堂2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용산구 한남2동 707 소재. 1977년 8월 25일 서울대교구 내에 거주하는 외국 인들(미군 제외)의 사목을 위한 본당(Parochia Personalis)으 로 교황청 인류 복음화성의 승인을 얻어 설립하였다. 주 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교 세〕 1989년 223명 1993년 561명. 〔역대 신부〕 초대 폴리센(J

국제 성체 대회 (⇨ 세계 성체 대회)國際聖體大會2
국채 보상 운동國債報償運動2

1907년에서 1908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의 하나. 1894년 청일 전쟁(淸日戰爭) 이후 일 본은 1906년까지 조선에 차관 공세를 펴 경제적 예속을 획책하였으며, 특히 1904년 제1차 한일 협약(韓日協約) 이 체결된 뒤에는 차관 공세를 더욱 노골화하여 네 차례 에 걸쳐 1,150만 원의 차관을 공여함으로써 조선의 경 제를 식민지화

국채 보상 운동
군난 (⇨ 박해)窘難2
군문 효수軍門梟首2

사형수의 머리를 베어 간두(竿頭, 장대)에 매다는 형 벌. 고려 · 조선의 5형(五刑) 중에서 사형에, 사형 중에 서 참형(斬刑)에 속하는 것으로 모반 · 대역죄 등 중범자 들에게 행하였다. 일반적으로 '효수' 또는 '효시' (梟示) 라 하며, 참수(斬首)나 능지처참(陵遲處斬), 거열(車裂) 등을 행한 뒤 경중(警衆)하는 의미로 행하여졌다. 능지 처참의 경

군문 효수
군산 본당 (⇨ 둔율동 본당)群山本堂2
군위 본당軍威本堂2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 605-1 소재. 1956년 12월 8일 왜관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관할 구역은 군위군 군위읍 소보면, 효령면, 부계면, 우 보면, 의흥면. 소속 공소는 2개소(부계, 의흥). 〔교 세〕 1989년 707명, 1993년 986명. 〔역대 신부〕 초대 박춘

군위 본당
군인 사목軍人司牧2

군 사목은 군인들을 그리스도인적 성숙으로 이끌기 위 하여 필요하다. 교회의 군 사목 임무는 인류와 하느님 백 성의 일원인 군인들이 존재하는 곳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교회의 사명에서 나온다. 신자 사병들은 그들 의 신분과 특성으로 인해 미사 참여와 각종 성사를 제대 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신앙 생활 여건이 불리한 신자 군인들을 찾아가

군인 사목
군인 주일2

전국 각 교구에서 군에 파견한 군종 신부와 국토 방위 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군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며, 군종 신부의 선교 및 사목 활동을 돕는 날. 6 · 25 동란 중인 1951년에 시작된 한국 가톨릭의 군 사목은 휴전 이후 군종 신부들 대부분이 소속 교구로 돌아가고, 교회 내 · 외적으로 군 사목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군인 주일
군자君子2

군(君)이라는 글자는 갑골문(甲骨文)에서부터 보이는 데, '윤' (尹)과 '구' (口)가 합해 이루어졌다. 尹' 이란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의 형태로,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고 본다. 즉, 관리가 책을 펴 놓고 사무를 처리한 다는 뜻으로, 이로부터 위정자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甲骨文字集釋, p. 908). '口' 는 물론 입으로서, 호령하여 따르게

군자
군종 후원회 (⇨ 한국 가톨릭 군종 후원회)軍宗後援會2
군종교구軍宗教區2

군인과 군속의 신앙 생활 전반을 사목하는 속인적(屬 人的) 교구. 군 사목은 1950년 6 · 25 동란 중 시작되었 으며, 1958년 3월에 '군종 신부단' 으로 창설되었다. 1961년 교회법적 근거를 가진 '가톨릭 군종 신부단'(military curia)으로 인준되었고, 1977년 군종 대목구(軍 宗代牧區, military vicariate)로 승격되

군종교구
군포 본당軍浦本堂2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군포시 재궁동 749-1 소 재. 1984년 9월 18일 호계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 며, 주보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금정동, 군포1~2동, 당정동, 산본1~2동, 주공 아파트 2단지, 화성군 반월면 대야미리와 둔대리 일부. 〔교 세〕 1984년 1,174명, 1988년 2,567명, 1993년 6,582

군포 본당
굶주림2

I . 성서학적 관점 기아 즉 굶주림은 히브리어로 라아브((רָעָב), 그리스어 로 리모스(λιμός)인데, 자의적 단식이 아니라 외부로부 터 강요된 '양식의 결핍' 을 뜻한다. 이 개념들은 후대에 정신적 의미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굶주림' 이 라는 말이 쓰인 영역은 육체적 삶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신적 · 영적 삶의 영역에까지 확대되었다

굶주림
굿2

한국 무속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의로서, 비구원(非救 援)의 상황인 불행을 제거하거나 궂은 일을 해소하여 행 복 내지 구원을 비는 종교 의례. 순수 한글 용어인 '굿' 의 의미는 한국어와 같은 계열인 알타이 어족의 언어들 에서 유추할 수 있다.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비교 언어학자가 된 람스테드(G.J. Ramstedt)는, 퉁구스어 의 쿠투(ku

굿
권 빈천시오 가베에 (1580?~1626)權 -2

일본명 嘉兵衛(또는 賀兵衛). 일본 예수회원으로 활동 하다가 순교한 한국인. 일본 교회 205복자 중의 한 사 람. 본래 3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던 장군의 아들로 서울 에서 태어난 권 빈천시오는 13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 면서 임금과 아버지를 따라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 멀 리서 일본군을 보게 된 그는 그들의 진영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

권득인 (1805~1839)權得仁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성도. 1841년 8월 교수형을 받아 순교한 권성여(프란치스코) 의 아우. 천주교 신자를 부모로 하여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을 하였으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16세 때 모 친마저 여의게 되었으므로 가난하여 천한 일로 생활을 꾸려 나갔다. 혼인한 뒤에는 얼마 동안 약장사를 하는 형 과 함께 살다가 분가

권득인 (1805~1839)
권력權力2

사회력의 한 형태로 타인을 강제하는 힘을 말한다. 영 향력, 통제, 지배와 뜻이 중복되어 구별하기 어려워 혼용 하기도 한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력을 '어떤 사 회 관계의 내부에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사를 관 철시킬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 으로 본다. 러셀(Bertrand Russell)은 '권력이란 의도하는 효과를 이루어 줄 수 있는

권력
권상문 (1768~1802)權相問2

순교자.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 본관은 안동. 한국 천 주교회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인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 코 사베리오)의 차남(혹은 3남)이요, 실학자 안정복(安鼎 福)의 외손. 경기도 양근(楊根)에서 태어나 백부 권철신 (權哲身, 암브로시오)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장성하여 오석충(吳錫忠)의 딸과 혼인하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일 찍부터 천주교 신자가

권상연 (⇨ 윤지충과 권상연)權尚然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