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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 (1795~1839)丁夏祥10

동정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나주(羅州, 즉 押海). 당색은 남인.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과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유조이(柳召史, 체칠리아) 성녀의 아들이다. 또한 순교자 정철상(丁哲祥, 가롤로)의 아우이자 성녀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의 오빠. 어려서부터 성가정의 신앙을 이어받아

정하상 (1795~1839)
정해박해丁亥迫害10

1827년(순조 27) 전라남도 곡성(谷城)에서 시작되어 전라도 전역, 경상도 상주(尙州), 충청도와 서울 일부 지역에서 약 3개월 동안 일어난 천주교 박해. 1815년의 을해박해(乙亥迫害)와 마찬가지로 이미 법령화되어 있던 박해령과 지방관들의 중앙 정부에 대한 과잉 충성이 박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이후 (斥邪綸音)이

정해성 (1943~1984)丁海星10

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1943년 1월 26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에서 정도진 (요한)의 아들로 출생하여 1959년 성신고등 학교에 입 학하였고, 1962년 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하여 1970년7월 11일 수원 고등동주교좌 성당에서 윤공희(빅토리노)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되어 안중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72년 5월부터 197

정해성 (1943~1984)
정화淨化10

세례성사로 거룩하게 된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꾸준히 잘못과 죄를 극복하려는 노력. 정화는 기도와 정결의 실천, 의향과 시선의 순수함을 필요로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죽은 다음 연옥에서 정화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제의 또는 의례에서 부정을 없애기 위한

정화
정화경 (1807~1840)鄭 ㅡ10

성인.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축일은 9월 20일. 충청도 정산(定山)의 가세가 넉넉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리를 배웠다. 성장하면서 주위에 비신자들이 많자 신앙 생활을 하기에 불편함을 느껴 고향을 떠나 수원 양간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이사를 하며 고향에 있는 자기 소유의 토지를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정화경 (1807~1840)
제3회第三會10

회원들이 세속에서 어느 수도회의 정신에 동참하여 그 수도회의 지휘 아래 사도적 삶을 살고 그리스도교 완성(완덕)을 향하여 노력하는 단체. 〔용 어〕 '제3회' 란 용어는 세 번째 수도 공동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남자 수도회가 첫 번째 회(Primo Ordo)이고, 여자 수도회는 남자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두 번째 회이며, 그 수도 공동체의 영성을 닮으려는

제3회
제관계 전승 (⇨ 사제계 전승)祭官系 傳承10
제구 (⇨ 성물)祭具10
제국주의帝國主義10

한 국가가 다른 한 국가나 여러 국가에 대해 정치적 ·군사적 · 문화적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그리고 착취와 불평등한 교환과 종속을 통하여 잉여 가치, 원료, 노동력등을 수취하는 국가 간의 팽창주의적 정책의 한 형태. 〔개 념〕 제국주의는 적어도 19세기 중엽 이후 독점 자본주의의 형성 · 발전과 연관되어 있는 현상이다. 즉 제국주의는 독점 자본주의 단계

제국주의
제기동 본당祭基洞本堂10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2동 182-16 소재. 1942년 5월 16일 혜화동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관할 구역은 제기1 · 2동, 용두1 · 2동, 안암3 · 4 · 5가 전지역. 〔교 세〕 1965년 3,500명, 1971년 3,400명, 1976년3,190명, 1981년 3,286명, 19

제기동 본당
제너럴 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號事件10
제노베파 (419/422?~512)10

성녀, 파리의 수호 성인, 프랑스어 이름은 주느비에브(Geneviève). 축일은 1월 3일. 〔생 애〕 419년 혹은 422년 파리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낭테르(Nanterre)에서 세베르(Sévère)와 제롱시아(Gérontia)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녀의 부모는 가난한 농 부였다고 하지만, 부유하고 존경받는 도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제노베

제노베파 (419/422?~512)
제논 (⇨ 엘레아 학파)10
제대祭臺10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재현되는 제사장이자 하느님의 백성이 미사 때에 다 함께 참여하는 주님의 식탁이며, 제관이고 제물이며 살아 있는 돌이고(1베드 2. 4)모퉁잇돌인(에페 2, 20)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성당 건축의 중심점이자. 미사의 중심 장소이다. 성당 건축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비의 표지라면,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이며 중심인 그리스도

제대
제대포祭臺布10

주님을 기념하는 미사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제대를 덮는 백포. 제대가 미사를 봉헌하는 장소이며 주님 만찬의 식탁임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로마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거행할 때 제대를 천으로 덮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인들에게는 식탁을 포로 덮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2세기 말의 위경인 《토마스

제대포
제라르도, 브로뉴의 (880?~959)10

성인. 아빠스. 수도회 개혁가. 축일은 10월 3일 880년경 벨기에 나무르(Namur) 교구의 포스(Fosse) 근교인 스타브(Stave)의 귀족 집안에서 상시오(Sanio)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 플렉트루드(Plectrud)는 리에주(Liège)의 주교인 스테파노의 조카였다. 당시 귀족 신분의 자제들처럼 제라르도 역시 기사 교육을 받았는데, 군대

제르마노, 오세르의 (378?~448)10

성인. 프랑스 중부 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오세르(Auxe-me)의 주교. 축일은 7월 31일. 여러 세기 동안 투르의 마르티노(316?~397)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고 공경받는 프랑스 성인이다. 말과 행동과 기적의 능력이 뛰어난 성인으로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2)는 그를 일컬어 "갈리아의 기적의 제르마노"라고 불렀다. 〔생 애〕 리용(Lyo

제르마노, 오세르의 (378?~448)
제르마노, 콘스탄티노플의 (634/640?~733)10

성인.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715~730) . 축일은 5월 12일. 제르마노는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로, 8세기의 반이단론 저술가에 속한다. 그는 성화상 공경의 옹호자이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찬미를 담은 강론을 남겼고 전례를 권장한 분으로서 의미가 있는 사람이다. 〔생 애〕 제르마노는 634년 또는 640년경 동로마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

제르마노, 콘스탄티노플의 (634/640?~733)
제르마노, 파리의 (496?~576)10

성인, 파리의 제20대 주교, 아빠스. 축일은 5월 28일. 496년경 프랑스의 손에루아르(Saône-et-Loire)에 있는오툉(Autun) 근처에서 출생한 그의 부모는 엘레우테리오 (Eleutherius)와 에우세비아(Eusebia)였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신부인 사촌 스카필리온(Scapilion)의 도움으로 아발롱(Avalon)과 뤼지

제르마노, 파리의 (496?~576)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10

성인. 2세기경 밀라노의 순교자들. 밀라노와 건초 만드는 사람들의 수호 성인. 도둑을 찾으려고 할 때 이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풍습이 있었다. 축일은 유해가 옮겨진 6월 19일에 기념하는데, 그리스 교회에서는 순교한 날로 추정되는 10월 14일을 축일로 거행한다. 성인전(Acta Sanctorum, June, IV, 680~704)에 기록된 성인들의 행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