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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교황(492~496). 5세기 교황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축일은 11월 21일. 아프리카 출신으로 로마 교회의 대부제(arhidiaconus)를 역임하였다. 그가 492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전임 교황들 재임시 교회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 같다. 그가 교

주교. 교회 역사가. 젤라시오는 소아시아의 서북부에 있는 도시 시지쿠스(Cyzicus)에서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젤라시오는 수도자로서 존경을 받다가 426년 시지쿠스의 주교로 선출되었고,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후에 그는 비티니아(Bitynia)에서 생활하면서, 475년 이후 3권으로 구성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
주교. 교회 역사가. 팔레스티나에 있는 체사레아의 주교(367~395)였던 그는 예루살렘의 치릴로(Cyrilus, +386)의 조카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젤라시오는 367년 체사레아의 주교가 되었지만,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에서 결의한 신앙 고백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로마 제국 발렌스 황제(364~378)에 의해 372년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항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기 6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Yehudah ha-Galili, +6)라는 사람의 영도 아래 결성한 조직. '열혈당' 또는 '열심당' 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젤롯당에 대한 위와 같은 전통적인 설명은 헨겔(M. Hengel)의 종합적

성녀.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 성녀 이 가타리나의 3남매 중 맏딸.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모친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친척들이 천주교를 금하게 되자, 모친은 막달레나가 7~8세 되었을 때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왔다. 막달레나는 외가에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자라면서 길쌈과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 이인덕(李仁德, 마리아)의 모친. 가난한 외교인 양반의 아내로, 함께 살던 친정 어머니에게 두 딸과 함께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남편 몰래 신앙 생활을 해야 했으므로, 바르바라는 남편이 지방으로 여행간 틈을 이용하여 두 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남편 때문에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순천시 조곡동 269-4 소재. 1970년 5월 8일에 순천(현 저전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십자가. 관할 구역은 조곡동, 덕연동, 풍덕동, 생목동 전 지역과 장천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898명, 1974년 1,139명, 1980년 1,612명, 1985년 2,109명, 1990년 3,067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본래 충청도 덕산(德山) 황무실 사람으로, 공주(公州) 마련동으로 이사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67년 9월에 공주 포교에게 박 서방 · 윤 서방과 함께 체포되었다. 공주 진영(鎭營)으로 붙잡혀 갈 때 그의 모친이 따라나서자, 그는 천주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잡혀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어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시몬. 그는 조 타대오의 형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두 번이나 잡혔다가 도망쳤다. 뒤에 충청도 목천(木川) 칠암면 공심리에서 살다가 1870년 3월 24일 서울 포교와 목천 포교에게 붙잡혔다. 이때 포졸들이 그에게 천주교를 믿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믿는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목천 관아에서 관장이 심문할 때에
한학자. 유배자. 세례명은 유스티노. 경기도 양근(楊根)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생활하였다. 그가 언제 어떠한 계기로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김범우(金範禹, 토마스)로부터 교리를 들었음은 이후 심문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조동섬은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당시 천주교 서적을 본 일 때문에 양근군의 옥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오늘날 이란과 아프카니스탄 접경 지역에 있는 고산 지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이며 종교 개혁가였던 조로아스터(Zoroaster ; Zarathustra, 기원전 628?~551?)가 창시한 종교. 조로아스터교는 신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종교로, 사원과 가정에 성화(聖火)를

베네딕도회 보이론(Beuron)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그레고리오. 세례명은 루도비코. 1906년 11월 19일 독일 로텐부르크(Rottenburg) 교구의 스파이힝겐(Spaichingen)에서 태어난 조르거는, 1928년 베네딕도회 보이론 연합회의 보이론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은 후 1929년 6월 29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독일의 가톨릭 작가, 1892년 1월 29일 베를린 근처에서 출생한 조르게는 다른 많은 표현주의 작가들처럼 빌헬름 시대(1871~1918)의 시민 사회를 거부하였고, 그 때문에 김나지움을 중퇴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젊은 이상주의자들처럼 무미건조한 대도시의 삶에서 괴로움을 느꼈고, '새로운 인간' 을 동경하였다.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이후 그는 종교적
이탈리아 화가. 본명은 조르조 바르바렐리(Giorgio Bar-barelli), 일명 조르조네(Giogione) 16세기 초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조르조는 생애와 경력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모호하여 신비에 싸인 화가로 알려져 있다. 1550년 《예술가 열전》(Vite de' piú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경기도 수원 양간(梁澗) 사람으로, 수원 돌모루에 살던 김치공(金致公)의 권유로 천주교서(天主敎書)를 배웠다. 이어 김치공에게 대세(代洗)를 받고 세례명을 얻었으며,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에게 두 차례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명오는 병인박해를 겪으면서 냉담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1871년 3월 26일(음) 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