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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천주교 전 교 회장이요 교리서 저 술가. 명도회(明道會) 의 도회장(都會長, 총회 장). 세례명은 요한. 본 관은 김해(金海). 황해 도 수안군 무송동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글공 부에 힘써 15세 때 향 시(鄕試)에 합격하였 다. 이 무렵부터 인생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으며 한때 경향(京 鄕)의 유명 인사를 찾 아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천주교인. 천주가사 (自身歌)의 저자. 세 례명은 야고보. 본관은 예안. 김휘중(金輝重, 요셉) 신부 의 부친. 그의 집안은 경상도 예천 출신인 조부 김 안토 니오 때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며, 그가 신앙 생활을 위해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현 배론 성지가 있는 지역) 인근 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김낙호가 태어난 곳도 이곳 구학리의 꽃담(일명
제2대 수원교구장. 주교. 세례명은 안젤로. 1922년 만주 간도성 연길현 다조구 대령동(間島省 延吉縣 茶條溝 大領洞)에서 출생. 14세 때 수원에 살던 형을 찾아가 그곳에서 수원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덕원(德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10월 17일 연길교구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옥에 갇혀 있던 연길교구장 브레허(Breher, 白化東) 주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로사. 일명 '전의 감골집' .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과부가 된 후 천주교 에 입교하였다. 이때부터 모친과 동생들을 돌보며 열심 히 수계하기 시작하였고, 선교사들이 입국하자 자주 성 사를 받고 때로는 음식도 마련해 주었다. 이로 인해 1839년 1월 16일(음 1938년 12월 2일)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일가,
성인.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 세례명은 루시아. 강 원도 강촌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 부 친을 여의고 9세 때 모친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했으 며, 열심히 수계하면서 14세 때 수정(守貞)을 결심하였 다. 그 뒤 모친이 사망하자 가산을 전부 팔아 장례를 치 르고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해 주며 생활하다가 이매임

최초의 한국인 신부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천주 교 103위 성인 가운데 한 사람. 세례명은 안드레아. 아 명은 재복(再福). 보명은 지식(芝植). 관명은 대건(大 建). 본관은 김해. 〔가 문〕 김대건은 1821년(순조 21) 8월 21일 충청도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김제준(濟俊, 보명 은 濟麟, 字는 信明, 이냐시오)과 장흥(長興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화준〔金若古排, 야고보〕의 형. 충청도 청양의 수단이 (현 충남 청양군 사양면 新旺里의 水丹)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이미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나 수계하지 않다가 양친 이 사망한 뒤부터 신자의 본분을 지키는 한편, 보령의 청 라동(현 충남 보령군 青羅面)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공주의 한 옹기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치릴로. 1927년 3월 18일 만주 안동성(安東省) 안동시 채시가 13번지에서 김문규 (金文奎, 바오로)와 윤정혜(尹靜惠, 아네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문규는 국내에서의 독립 운동이 어려워 만 주로 이주, 만주의 영국 조계(租界) 내에 거주하며 국내 의 독립 지사들과 뜻을 합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의주(

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08년 5월 25일 경남 울산군 언양면 송대리 405의 2번지에서 김성준(요 셉)과 박부경(벨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6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 김천 지좌 본당(1935. 6~1938. 11), 청학 본당 (1938. 11~1940. 8), 진영 본당(1940. 8
대전교구 신부. 세례 명은 마티아. 1908년 1월 19일 경남 진양군 문산면에서 출생하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35년 6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서 장수 수분 리(水分里, 현 長溪) 본 당의 주임 신부로 많은 냉담자를 회두시키고 전교에 노력하였으며, 수분리에서 장수읍으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 1939년 4월 29일 신태인(新泰仁)

덕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르코. 1915년 김성준(요 셉)과 박부경(벨다)의 아들로 태어나 1943년 3월 6일 사제로 서품되 었다. 1944년 11월 평 안남도 안주(安州) 본 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4월 9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 원을 개설하게 하였고, 해방 후 본당에서 '우 리 말 공부 교실' 을 시 작하여 좋은 결실을 거 두었다. 1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가롤로.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형. 본관은 광산(光山). 1919년 6 월 25일 경북 금릉군 대항면 향천리(金陵郡 垈項面 香川 里) 758번지에서 김영석(金永錫, 요셉)과 서중하(徐仲 夏, 마르티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충청도 연산(連山)에 살던 조부 김보현(金甫鉉, 요한)은 무진박해 때 체포되 어 서울로 압송,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 토마. 본관 은 안동. 기록에는 계호(季浩) 또는 면호(冕浩)라고도 나온다. 경상북도 안동 박골의 양반 집안 태생으로 일찍 이 서울 주동(鑄洞)으로 이주해 살았다. 19세 때인 기해 년(1839)에 모친과 맏형 익례(翼禮), 둘째 형 응례(應禮) 가 먼저 입교하였고, 그는 맏형으로부터 영세를 받고 입 교하였다. 그
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황해도 감목 대리. 1873년 충청남도 서산군 소길리(현 忠南 瑞山郡 八峰面 金 鶴里)에서 태어나 일찍 이 부모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의지할 곳이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중 당시 합덕(合德)에서 전교하던 퀴를리에(Cu- rlier, 南一良) 신부에게 신심과 총명함을 인정 받아 용산 예수성심신 학교에 입

대구대교구 신부. 세 례명은 요셉. 1873년 6 월 7일 울주군 언양읍 구교우촌 살티(현 울주군 상북면 현리)에서 김득준 과 박 요안나의 장남으 로 태어났다. 말레이 반 도 페낭 신학교에 유학 하였다가 귀국하여 용 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 9월 22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 송화 산골몰 (松禾郡 桃源面 松仙里) 공소에서 1년 동안 활동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본 관은 안동. 노론 집안 출신으로 김건순(金健淳, 요사팟) 의 사촌 형.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에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가 심양(瀋陽)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김 상헌(金尙憲)의 후예. 집안이 가난하였으므로 입신 출세 를 위해 열심히 학문에 전념하다가 선학의 책들에 모순 된 점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고
한국 천주교회의 첫 희생자인 김범우(金範禹, 토마, 1751 ~ 1787)와 아우인 이우(履禹, 바르나바, ?~1801), 현 우(顯禹, 마태오, ?~1801). 김범우의 자는 정지(正之) . 본관은 경주. 이우와 현우(보명은 順禹)는 김범우의 서제 (庶弟)로, 여섯째와 일곱째였다. 〔입교와 초기 활동〕 김범우는 1751년(영조 27) 서울 남부의 명례방(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1920년 8월 1 일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서 태어나, 동성고등학교를 거쳐 성신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 10월 22일 명동 성 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어 영등포 본당 보좌 신부 로 사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46년 11월 걸포리 본당 (현 김포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로 전임되었다. 걸포리에 서 장래의 발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