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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1824 ~ 1903)金起浩2

구한말의 천주교 전 교 회장이요 교리서 저 술가. 명도회(明道會) 의 도회장(都會長, 총회 장). 세례명은 요한. 본 관은 김해(金海). 황해 도 수안군 무송동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글공 부에 힘써 15세 때 향 시(鄕試)에 합격하였 다. 이 무렵부터 인생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으며 한때 경향(京 鄕)의 유명 인사를 찾 아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김기호 (1824 ~ 1903)
김낙호 (1866~1951)金樂浩2

천주교인. 천주가사 (自身歌)의 저자. 세 례명은 야고보. 본관은 예안. 김휘중(金輝重, 요셉) 신부 의 부친. 그의 집안은 경상도 예천 출신인 조부 김 안토 니오 때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며, 그가 신앙 생활을 위해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현 배론 성지가 있는 지역) 인근 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김낙호가 태어난 곳도 이곳 구학리의 꽃담(일명

김남수 (1922~ )金南洙2

제2대 수원교구장. 주교. 세례명은 안젤로. 1922년 만주 간도성 연길현 다조구 대령동(間島省 延吉縣 茶條溝 大領洞)에서 출생. 14세 때 수원에 살던 형을 찾아가 그곳에서 수원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덕원(德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10월 17일 연길교구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옥에 갇혀 있던 연길교구장 브레허(Breher, 白化東) 주

김남수 (1922~ )
김노사 (1784~1839)金老沙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로사. 일명 '전의 감골집' .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과부가 된 후 천주교 에 입교하였다. 이때부터 모친과 동생들을 돌보며 열심 히 수계하기 시작하였고, 선교사들이 입국하자 자주 성 사를 받고 때로는 음식도 마련해 주었다. 이로 인해 1839년 1월 16일(음 1938년 12월 2일)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일가,

김누시아 (1818~1839)金累時阿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 세례명은 루시아. 강 원도 강촌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 부 친을 여의고 9세 때 모친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했으 며, 열심히 수계하면서 14세 때 수정(守貞)을 결심하였 다. 그 뒤 모친이 사망하자 가산을 전부 팔아 장례를 치 르고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해 주며 생활하다가 이매임

김누시아 (1818~1839)
김대건 (1821~1846)金大建2

최초의 한국인 신부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천주 교 103위 성인 가운데 한 사람. 세례명은 안드레아. 아 명은 재복(再福). 보명은 지식(芝植). 관명은 대건(大 建). 본관은 김해. 〔가 문〕 김대건은 1821년(순조 21) 8월 21일 충청도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김제준(濟俊, 보명 은 濟麟, 字는 信明, 이냐시오)과 장흥(長興

김대건 (1821~1846)
김대권(?~1839)金大權2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화준〔金若古排, 야고보〕의 형. 충청도 청양의 수단이 (현 충남 청양군 사양면 新旺里의 水丹)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이미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나 수계하지 않다가 양친 이 사망한 뒤부터 신자의 본분을 지키는 한편, 보령의 청 라동(현 충남 보령군 青羅面)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공주의 한 옹기

김덕제 (1927~1991)金德濟2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치릴로. 1927년 3월 18일 만주 안동성(安東省) 안동시 채시가 13번지에서 김문규 (金文奎, 바오로)와 윤정혜(尹靜惠, 아네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문규는 국내에서의 독립 운동이 어려워 만 주로 이주, 만주의 영국 조계(租界) 내에 거주하며 국내 의 독립 지사들과 뜻을 합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의주(

김덕제 (1927~1991)
김동언(1908~1981)金東彥2

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08년 5월 25일 경남 울산군 언양면 송대리 405의 2번지에서 김성준(요 셉)과 박부경(벨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6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 김천 지좌 본당(1935. 6~1938. 11), 청학 본당 (1938. 11~1940. 8), 진영 본당(1940. 8

김동욱(1908 ~ 1987)金東旭2

대전교구 신부. 세례 명은 마티아. 1908년 1월 19일 경남 진양군 문산면에서 출생하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35년 6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서 장수 수분 리(水分里, 현 長溪) 본 당의 주임 신부로 많은 냉담자를 회두시키고 전교에 노력하였으며, 수분리에서 장수읍으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 1939년 4월 29일 신태인(新泰仁)

김동욱(1908 ~ 1987)
김동철 (1915~1950)金東哲2

덕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르코. 1915년 김성준(요 셉)과 박부경(벨다)의 아들로 태어나 1943년 3월 6일 사제로 서품되 었다. 1944년 11월 평 안남도 안주(安州) 본 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4월 9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 원을 개설하게 하였고, 해방 후 본당에서 '우 리 말 공부 교실' 을 시 작하여 좋은 결실을 거 두었다. 1

김동철 (1915~1950)
김동한 金東漢(1919~1983)2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가롤로.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형. 본관은 광산(光山). 1919년 6 월 25일 경북 금릉군 대항면 향천리(金陵郡 垈項面 香川 里) 758번지에서 김영석(金永錫, 요셉)과 서중하(徐仲 夏, 마르티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충청도 연산(連山)에 살던 조부 김보현(金甫鉉, 요한)은 무진박해 때 체포되 어 서울로 압송,

김동한 金東漢(1919~1983)
김면호 (1820~1866)金勉浩2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 토마. 본관 은 안동. 기록에는 계호(季浩) 또는 면호(冕浩)라고도 나온다. 경상북도 안동 박골의 양반 집안 태생으로 일찍 이 서울 주동(鑄洞)으로 이주해 살았다. 19세 때인 기해 년(1839)에 모친과 맏형 익례(翼禮), 둘째 형 응례(應禮) 가 먼저 입교하였고, 그는 맏형으로부터 영세를 받고 입 교하였다. 그

김명제 金命濟(1873~1960)2

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황해도 감목 대리. 1873년 충청남도 서산군 소길리(현 忠南 瑞山郡 八峰面 金 鶴里)에서 태어나 일찍 이 부모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의지할 곳이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중 당시 합덕(合德)에서 전교하던 퀴를리에(Cu- rlier, 南一良) 신부에게 신심과 총명함을 인정 받아 용산 예수성심신 학교에 입

김명제 金命濟(1873~1960)
김문옥 金紋玉(1873~1941)2

대구대교구 신부. 세 례명은 요셉. 1873년 6 월 7일 울주군 언양읍 구교우촌 살티(현 울주군 상북면 현리)에서 김득준 과 박 요안나의 장남으 로 태어났다. 말레이 반 도 페낭 신학교에 유학 하였다가 귀국하여 용 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 9월 22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 송화 산골몰 (松禾郡 桃源面 松仙里) 공소에서 1년 동안 활동하

김문옥 金紋玉(1873~1941)
김백순 (?~1801)金伯淳2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본 관은 안동. 노론 집안 출신으로 김건순(金健淳, 요사팟) 의 사촌 형.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에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가 심양(瀋陽)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김 상헌(金尙憲)의 후예. 집안이 가난하였으므로 입신 출세 를 위해 열심히 학문에 전념하다가 선학의 책들에 모순 된 점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고

김범우 (⇨ 김범우와 형제들)金範禹2
김범우와 형제들金範禹 - 兄弟 -2

한국 천주교회의 첫 희생자인 김범우(金範禹, 토마, 1751 ~ 1787)와 아우인 이우(履禹, 바르나바, ?~1801), 현 우(顯禹, 마태오, ?~1801). 김범우의 자는 정지(正之) . 본관은 경주. 이우와 현우(보명은 順禹)는 김범우의 서제 (庶弟)로, 여섯째와 일곱째였다. 〔입교와 초기 활동〕 김범우는 1751년(영조 27) 서울 남부의 명례방(

김범우와 형제들
김병호 (1920~1984)金炳昊2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1920년 8월 1 일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서 태어나, 동성고등학교를 거쳐 성신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 10월 22일 명동 성 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어 영등포 본당 보좌 신부 로 사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46년 11월 걸포리 본당 (현 김포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로 전임되었다. 걸포리에 서 장래의 발전

김병호 (1920~1984)
김보록 (⇨ 로베르)金保祿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