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126건
연길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오로. 1913년 만주 훈춘(琿春)에서 태어나 1942년 5월 1일 사제로 서 품되었다. 공산당의 박해로 인하여 간도(間島)에서 강원 도 이천(伊川) 본당으로 사목지를 옮겨 활동하였는데, 북한에서 공산당의 탄압이 심해지고 많은 신부들이 체포 됨에 따라 신부 부재 지역을 찾아다니며 신자들을 돌보 았다. 그러던 중 1950년 6월 2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을해박해(乙亥迫害) 때 원주 감옥에서 옥사한 김강이(金 綱伊, 시몬)의 조카. 충청도 서산의 부유한 중인 집안 출 신으로 부친 김창귀(金昌貴, 타대오)와 백부를 따라 전 라도 고산(高山), 경상도 진보(珍寶) '머루산' (현 영양군 石浦面 葡山洞), 울진(蔚珍) 등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집안 하인으로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 코. 충청도 덕산 비방고지〔菲芳串, 현 충남 예산군 新岩面 下坪里〕의 양가(良家)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던 중 천주교 신앙을 안 뒤부터는 기도와 독서로 생활하였다. 또 부모 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많은 희사를 하였으며, 교리를 실천함으로써 신앙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지한 사람 들을 교화하고, 기도 생활
대구대교구 신부. 세 례명 요한. 본관 김해. 1905년 12월 6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대리(大 里)에서 김옥현(바오 로)과 윤 오틸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 세 무렵 전북 익산군 망 성면 나바위로 이사하 여 나바위 성당에서 운 영하는 계명학교를 졸 업하고, 16세가 되던 1920년 대구 성 유스 티노 신학교에 입학하 여, 1932년 10월 30일 사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본관은 경주(慶州). 병오박해 때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김준원(金俊遠, 아니 체도)의 손자. 1898년(광무 2) 8월 15일 경기도 시흥군 의왕면 청계리 206번지에서 김석오(金錫午, 세자 요한) 와 이치도(李致道, 마리아)의 5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 다. 7~8세부터 하우현(下牛峴) 본당 르 각(Le Gac, 郭 元良)

언론인. 교육가. 정치 가. 본관은 울산. 호는 인촌(仁村). 세례명은 비오. 전라북도 고창에 서 호남의 갑부 김경중 (金暻中)의 넷째 아들 로 태어나 3세 때에 큰 아버지 기중(棋中)의 양자가 되었다. 1906 년 전라남도 창평에서 영어를 공부하였고, 1908년 군산의 금호학 교(錦湖學校)에서 공부 하였다. 그 해 10월 새 학문을 배우고자 일본으로 건너

성인.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은 안토니오. 본 관은 경주. 이름은 우집(禹集)이고, '성우' 또는 치윤(致 允)은 그의 자이다. 경기도 광주 구산(龜山, 현 경기도 광 주군 東部面 望月里)에서 김영춘(金永春)과 청주 한씨(韓 氏)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하면서 도 인심 좋기로 유명하였는데, 성우 자신은 성품이 강직 하고 도량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마르타. 경기도 부 평 출신으로 결혼에 실패한 후 상경하여 장님 점쟁이와 재혼했는데, 그 집안에서 이미 천주교를 알고 있던 터라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그 후 외교인이던 남편이 사망하자 미신을 끊고 신앙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교우 들의 집을 전전하였으며, 어렵게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인내와 극기로써 신앙을 지켜냈다

전주교구 신부. 세례 명 토마스. 본관 경주. 구교우 가정 출신. 1955 년 4월 8일, 전북 김제 군 금산면 화율리(수류 본당)에서 김용기(바오 로)와 조남순(루시아) 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67년 전 주 남국민학교, 1970년 전주 남중학교, 1973년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대건 신 학 대 학 에 입 학 하여 1979년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알렉시오. 평남 순천군 은 산(殷山)에서 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최 아가다의 넷 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 친 김 프란치스코 사베 리오는 1864년 베르뇌 (Berneux, 張敬一) 주교 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 주교의 평안 · 황해도 전교 때 수행하였고, 병 인박해 후 황해도 · 강 원도 · 평안도에서 로베 르(Robert, 金保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빅토리오. 1911년 8월 12일에 태어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덕원(德源)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40년 3월 25일 연길교구(延吉敎 區)의 사제로 서품되었다. 간도 훈춘(琿春) 본당의 보좌 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43년 용정 상시(龍 井上市) 본당의 주임 신부로 전임되었다. 8 · 15 해방 후 간도를 점령한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암브로시 오. 관명은 언우. 일명 군미.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희생 자인 김범우(金範禹, 토마)의 친척으로 서울의 역관 집 안에서 태어나 교회 창설 직후에 입교하였다. 입교한 뒤 아내와 자식들이 천주교를 배척하여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1791년 이후 가족들을 떠나 지방의 교우들을 찾아다니면서 교회
조각가. 세례명 프란치스코. 경기도 안성 출생. 1947 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학년 재학 중 제1회 국전(國 展)에 '청년상' (青年 像)을 출품하여 특선의 영예를 차지하면서 미 술계 에 입 문 하 였 다 . 1950년 서울대학교 미 술대학과 1952년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30 여 년 동안 모교에 재직 하면서 수많은 조각가 를 배출하고 1천여 점 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세례명은 스테파노. 본관은 광 산(光山). 김동한(金東漢, 가롤로) 신부의 아우. 경북 대 구 남산동에서 김영석(金永錫, 요셉)과 서중하(徐仲夏, 마르티나)의 6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이 천주교와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조부 때부터인데, 조부인 김보현(金甫鉉, 요한)은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때 충남 논산군 연산

배교자요 밀고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여상.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정 하상(丁夏祥, 바오로),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유진길 (劉進吉, 아우구스티노),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등 지 도급 교우들을 밀고하였고,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의 복사인 정화경(안드레아)을 속여 포졸들을 주교의 거 처로 인도하
예수회 신부.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1943년 11월 22 일 인천시 중구 북성동에서 김윤묵과 김복강(점마)의 2 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1970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하였고, 1972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974년 9월 연세대학교 에서 동양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동성고등학교에 서 국민 윤리와 종교

신부. 세례명 아우구 스티노. 본관은 경주. 1868년 8월 14일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한 김 종륜(金宗倫, 루가)의 후손. 1874년 2월 28 일 경북 영천 용평(龍 坪)에서 태어난 김승연 은, 일찍이 성소를 받고 어린 나이인 1884년 페 낭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 1892년 7월 12일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계속, 이듬해 5월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알렉시오. 일명 시우재. 본관은 연산(連山). 충청도 청양(靑陽)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반신 불수의 몸이었 으나 신앙만은 굳게 지키면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며 교우들의 애긍으로 생활하였다. 또 글을 쓸 줄 알았으므 로 한 손으로 교회 서적을 필사하기도 하였고, 언제나 신 자의 본분을 지키면서 교우들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가다. 서울의 외 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을 모르고 살다가 결혼 후 장 년에 이르러 친정 언니의 권유로 교리를 배웠다. 본래 기 억력이 나빠 12단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여 세례를 받을 수 없었지만, 하느님을 알고 믿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하 여 지성으로 신앙 생활을 하던 중 1836년 9월(음) 김업 이(金業伊, 막달

장로교 목사요 교회 사가. 호는 매산(梅山). 1876년 만주에서 한국 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된 백홍준(白鴻俊)의 외손. 평북 의주군 피현 면 당후동(堂後洞)에서 김관근(金灌根) 목사와 백관성의 4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나 중원학교(重遠學校)와 선천(宣川)의 신성중학교(信聖中學 校)를 졸업한 뒤 평양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學校)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