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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디모테오. 1909년 6월 9일 강원도 이천에서 태어 나 1922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 학하였다. 1936년 3 월 28일 사제 서품을 받고 강원도 풍수원 본당 보좌로 재임하 다가 1939년 7월 양양 본당 3대 주임으 로 전임되어, 1940년 2월 65평의 성당과 25평의 교육 회관 신축 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광복 후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일명 치문. 본관은 광주(廣州).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의 남편이며, 성녀 이 아가타의 아버지. 성인 이광렬(李光 烈, 요한)의 형. 젊은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가 채 못 되어 천주교에 입교하여 지난날의 생활을 뉘우치고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 생활을 하여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교황에 대한 순명을 외적 · 공적으로 거부하거나 신자 들과의 친교를 거부하는 것. 초대 교회 때부터 다양한 모 습으로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일치를 어렵게 만들었던 분열과 쟁론을 지칭한다. 이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스키스마"(schisma)는 '갈라짐' 또는 '균열' 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키스마" (σχίσμα)에서 유래했다. 〔교회사적 의미의 형성과 역사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또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을 가리키는 용어. '이교' (paganismus)란 용어는 본래 그리스도교 이전 시 대에 있었던 종교적 · 윤리적 체계, 특히 그리스 및 로마 문화의 다신교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체계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가 교회 내에 도입되어 비그 리스도교와 그 신자들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1세기경에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일명 성겸. 충청도 음성 고 을에서 태어나 충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천주교를 배우기 위해 경기도 양근의 권일신(權日身, 프란 치스코 사베리오) ·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 형제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입교하였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외교인 선생이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1795년(정조 19) 을

19세기 초 · 중반 박학풍(博學風)의 실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규(伯揆). 호는 오주(五洲), 오주거 사(五洲居士) 또는 소운거사(嘯雲居士) 조부 덕무(德 懋, 1741~1793)와 부친 광규(光奎, 1795~1817)가 규장각 (奎章閣) 검서관(檢書官)을 지냄으로써 정조와 그의 가 문은 각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찍 출세

대전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27년 1월 12일 충 남 아산군 인주면(仁州面) 공세리(貢稅里) 193번지에서 태어나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상업학교 을조를 거쳐 성신 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3월 19일 명동 성당에 서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 을 받았다. 구합덕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한 이규남 신부는 1

조선 후기 기호 남인 출신의 문신이요 대표적인 공서 계(攻西系) 인물. 본관은 전주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 을 지낸 봉령(鳳齡)의 손자요 지평을 지낸 제현(齊顯)의 차남. 자는 휴길(休吉). 호는 척암(瘠菴) 1777년(정조 원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89년의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강제문신(講製文臣)에 선발되었으며, 사헌부 감찰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도미니코. 본명은 이기문(李 起文)이었으나 개명했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32년 5월 21일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안 동의 예천 본당 초대 주임으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여 부임 직후 안동 본 당에 기거하면서 성 당과 부속 건물을 신축하는 등 본

조선 후기 성호학파(星湖學派)의 학자. 본관은 광주 (廣州). 자는 사흥(士興). 호는 복암(茯庵). 양명학(陽明 學)을 정면으로 수용하여 성호학파 내에 널리 전파시킴 으로써 소장학자들의 주도적인 학문이 되게 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양명학을 수용한 소장학자들이 뒤에 대거 천주교를 신봉하였다. 따라서 천주교 수용과 발전에 미친 그의 영향은 적지가 않다. 〔가
신유박해 순교자. 충주 출신의 양반. 그는 권일신(權 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조카를 사위로 삼으면서 권일신과 사돈 관계를 맺었고, 이러한 인연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이기연은 천주교 교리 를 실천하는 가운데, 가족과 이웃 사람들을 입교시켰는 데, 이 중 이부춘(李富春) · 이석중(李石中) · 이아기련 (혹은 권아기련) 등이 알려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토마스. 본 관은 전주. 1884년 8 월 5일 충북 진천의 배티에서 효령대군(孝 寧大君)의 후손인 이 병의(李秉義)와 김석 현(金錫賢)의 6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출생 직후 경기도 안 성군 양성면 미산리 (美山里, 미리내)로 이 주하여 성장하였다. 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미 리내 본당 강도영(姜道永, 마르코) 신부의
주교. 제2대 군종교구장. 세례명은 베드로. 1947년 12월 31일 평남 평양시 교구리에서 이재풍(베네딕도)과 정용철(수산나)의 4남 4녀 중 장남으로 출생. 경동고등 학교를 거쳐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진학하여 1975년 12 월 8일 명동 대성당에서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 경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6년 1월 천호동 본당 보좌, 그

조선교구 신부.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862년 8월 10일 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水滿里) 성불(成佛)에 서 본관이 성주(星州)인 이수현(李秀賢, 야고보)과 서 아가타의 장남으로 출 생하여 병인박해를 겪으면서 성장했다. 1879 년 5월 블랑(G. Blanc, 白圭三) 신부가 전북 장수 큰골에서 신학생 양성을 준비하자 이내 수도 이곳에서 예비 신 학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1-1 서강대학교 내 이냐시오관 306호 소재. 1993년 7월 31일 예수회 한국 지구에서 물질적 발전 과 번영 속에 빈곤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이고 지 속적이며 통합적인 방법으로 영성적인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역대 소장〕 초대 이상일(李相一) 시몬(1993. 7~1995. 6), 2대 김정웅(金正雄) 베드로(19
성인. 신부. 예수회의 설립자. 영성 수련의 수호 성인. 축일은 7월 31일. 〔생애와 활동〕 출생 및 회심 : 이냐시오는 1491년에 스페인 기푸스코아(Guipúzcoa) 지방의 아스페이티아(Azpeitia) 읍 위쪽의 로욜라 성(城)에서 아버지 벨트랑 야녜 스 데 오녜스 이 로욜라(Beltrán Yañez de Oñez y Loyola)와 어머니 마리아

성인. 순교자. 안티오키아의 주교. 교부. 축일은 10월 17일. 〔생 애〕 이냐시오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세운 시 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다음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에 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

이단자 색출과 심문을 위해 그레고리오 9세 교황(1227~ 1241)이 설립한 법정. 이를 "마녀 재판"이나 "종교 재판" 이라 번역하는 것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역 (誤譯)이다. 이단 심문을 단순히 제도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여러 형태의 이단에 대응하는 법정이 있 었기 때문에 그 법정들을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본 질을

세례받은 후 천상적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어떤 진리를 완강히 부정하거나 그것에 대해 완고히 의심하는 것. 가톨릭 교회의 교의에 대한 완강한 부정이나 의심하 는 이를 "이단자" (haereticus)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예전 에 '이단' 보다는 "열교" (裂敎)란 말을 사용하였었는데, 이는 특히 프로테스탄트와 그 신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였 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