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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의 신자. 세례명은 미상. 본관은 전주이며, 1762년 전남 영광군 월산리(月山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명일(李命逸)이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윤두서(尹斗緒)의 손녀이다. 유관검(柳觀儉)은 매형의 종제로 친사돈간이었으며, 이러한 관계로 두 사람은 매우 친숙하게 지냈다. 이우집은 1795년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전주의 누님 집에 묵게 되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시몬. 1915년 6월 6일 이정병(李情柄, 요한)과 서방(아가타)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였으나, 곧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로 이사하여 성장하였다. 병인박해 순교자의 후예인 그는 구룡 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 3월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 상업학교 을조(乙組)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1935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토니오. 연풍(延豊)에서 태어났다. 수십 년 전에 상경하여 소공동(小公洞)에 거처하였으며 30세에 입교하였다. 이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 다블뤼(Daveluy, 安敦伊)주교 · 칼래(Calais, 姜) 신부 등을 만나 성사를 보았으며, 얼마간 다블뤼 주교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또 홍봉주(洪鳳周
신유박해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유관검(柳觀儉)의처. 1801년 10월 22일 동서 신희(申喜), 조카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조카 유문석(柳文碩, 요한)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옥에 수감되었고, 11월 11일에 평안도 위원으로의 유배가 결정되었다. 이육희와 가족들은 국법에 따라 죽기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어떤 특정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생기는 잉여 가치. 이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관심에 근거한다. 이윤이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하는 문제를 추상적으로 평가하거나, 개인주의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윤 창출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결과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경제 활동에서 생기는 이윤은 그것이 사회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한. 속명(俗名)은 의서. 일명 제헌. 윤경이라는 기록도 있다. 충청도 홍주(洪州)의 중인(中人)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구교우 집사람이다. 고향을 떠나 경상도 상주 갈골로 이주했으며, 부친이 사망한 후에는 다시 문경(聞慶)의 여우목(狐項里]으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외교인 30호를 입교시켜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186

초기의 천주교 신자. 세례명은 마태오. 본관은 전주(全州).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의 아버지. 지봉(芝峰) 이수광(李睟光)의 8대손. 성호(星湖) 이익(李翼)의 문하에서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 김원성(金源星) 등과 수학하였으며, 천진암 · 주어사 강학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785년(정조 9) 을사 추조 적발 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발생했을 때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황해도 백천(白川) 출신으로 의업(醫業)에 종사했다. 1857년에 상경(上京)하여 차동(車洞)에 거주하며 정의배(丁義培, 마르코)에게 교리를 배웠고, 1859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교리책과 묵주, 십자패 등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이덕보(李德甫, 마태오)와 함께 황해
조 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관계 진출을 단념하고 근기(近畿) 지방인 안산(安山)에서 살면서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여 실학을 발전시켰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어 그의 실학을 계승 발전시킴에 따라 성호학파(星湖學派)가 형성되었으며, 이들 성호학파의 인물들은 훗날 천주교 수용을 주도하였

성녀(聖女). 동정녀(童貞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마리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서울의 매우 가난한 양반인 외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의 동생이다. 그녀의 외할머니가 의탁할 데가 없어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매우 신앙심이 깊은 신자였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전교로 언니 이영덕과 어머니 조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욥. 그의 이름은 태문(太文)으로도 나오나 흔히는 안의(安義) 이씨(李氏)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충청도 홍주(洪州)의 대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이점손(李占孫)에게 천주교를 배워 신유박해(辛酉迫害) 이전부터 수계 생활을 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가 경상도 안의로 귀양
타인이나 어느 기관의 신용 또는 화폐를 사용한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소득의 한 형태이기도 하며 채무 증서를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소득이다. 〔고대와 성서의 규정〕 고대 세계에서 차용인은 원금과 추가 부담금, 즉 이자를 갚도록 되어 있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일이 허용되었으나, 같은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하는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 본관은 평창(平昌). 강원도 정선 출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 신자였던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손자이며, 이택규(李宅逵)의 아들. 이승훈의 세 아들(宅逵 · 國逵 · 身逵) 가운데 아버지 이택규와 작은아버지 이신규가 천주교를 신봉하여 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천주교를 믿었다. 정하상(丁夏祥, 바오로)과 반년 정도 같이 지내면
원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13년에 태어나 덕원 신학교를 졸업하여 1940년 3 월 25일 사제 서품을받았다. 이재철 신부는 1945년 9월 청진 본당 의 바인거(M. Bainger,마르코) 신부가 병사하자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며, 함흥과 덕원 면속구의 대부분의 신부들이 북한 정치 보위부에 체포되었을 당시 그때를 면했기 때문에 한국 전쟁 이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그의 이름은 '종일' 로도 나온다.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성질이 끗끗하고 바르고 관대하여 모든 이가 우러러보고 존경하였다. 20세가 넘어서 입교한 그는 고향에서 자유롭게 천주교를 받들고 실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집안과 재물과 이웃을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산골에 은거하였다. 그 뒤 여러 고장으로 다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09년 5월 9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낙양면(樂壤面) 내락리(內洛里) 속칭 냉골 마을에서 아버지 이영환(아우구스 티노)과 어머니 김 마리아 사이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당 훈장이던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고, 강원도 이천의 포내 본당 부이수(P. Bouyssou, 孫以燮) 신부의 추천으로 용산 예수성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알렉시오. 1919년 4월 황해도 안악군 문산면 원성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태환(李泰煥, 시메온)은 전주(全州) 이씨로 병인박해(丙寅迫害)때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한 의안대군(宜安大君)의 17대 손인 의송(義松, 프란치스코), 붕익 (鵬翼, 프란치스코, 의송의 아들), 천조(天祖, 바오로, 의송의 손자), 김어분(金於忿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순식(淳植). 본관은 경주(慶州). 부산 동래 출신. 언제부터 동래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선조 때부터 거주해 온 것으로 보인다. 무임(武任) 가문 출신으로 부친 이재한(李載漢)은 장관청(將官廳)의 초관(哨官)을 거쳐 파총(把撩)과 천총(千揀)을 역임하였다. 이정식은 동래 장교(將校)였다가 무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