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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셉. 성인 조화서(베드로)의 아들이며, 1839년에 치명한 조 안드레아의 손자. 1848년 충청도 신창 남방재에서 조화서와 한 막달레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조윤호는 8세 때에 모친을 여의었으며 1865년 부친을 따라 전주의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이루시아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빈천시오. 1907년 황해도 장연군 읍외리에서 조성옥(趙成玉, 디다고)과 김홍석(金興石, 수산나)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장연 본당 김명제(金命濟, 베드로)신부의 추천으로 1920년 9월 용산 신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12월 17일 대신학교를 마치고 뮈텔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3년 1월 춘천 본당 보좌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14년 7월 28일 서울 용산구 신창동에서 출생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마치고 1939년 6월 24일 명동 성당에서 라리보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명동 주교좌 본당보좌, 1941년 7월 장호원 본당 보좌, 1942년 2월 명동 주교좌 본당 보좌를 거쳐 1943년 7월 안성 본당 6대 주임을 맡으며 안법

법조인 · 정치가. 세례명은 바오로. 호는 일운(逸雲). 1912년 11월 19일 전남 광양 출생.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여, 1940년 조선 변호사 시험과 일본 고등문관 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43년 판사로 임용되었고, 해방 후 서울 지방 검찰청 부장검사에 취임하여 1946년 조선 정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요셉. 한국명은 양수춘(楊秀春) 1884년 12월 30일 프랑스의 랑그르(Langres) 교구의 페네(Peigney) 면에서 출생하였다. 1902년 9월 9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6년 12월 7일 페낭 신학교로 옮겼다. 1907년 7월 7일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 한국으로 발령되어 8월 8일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모세. 한국명은 조득하(趙得夏). 1866년 2월 6일 출생한 그는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888년 12월 12일 임지인 조선으로 떠났다. 1889년 초에 조선에 도착하여 서울에서 기초적인 조선 말을 배우고 곧 경상도 북부 지방을 맡아 약 1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였다. 당시 부산이 빠르게 발
평신도 지도자. 세례명은 마르코. 1896년 3월 24일(음) 서울 삼각동에서 출생하여 계성학교(啓星學校)를 졸업하고 한의약계에 투신하였다. 종로 화평당(和平堂) 약방에서 10여 년을 근무하다 약방 주인 이응선(李應善)의 사위가 되어 화평당의 운영을 맡았고, 그 뒤 조선매약 주식회사(朝鮮賣藥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전무를 거쳐 사장에 취임하였다. 해방 직후 조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르바라. 성인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의 처. 경기도 양근의 양반인 조 프란치스코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6세 때 남이관과 결혼하여 친정에서 살았는데,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면서 친정 아버지는 순교하고, 시아버지는 전라도 강진으로, 남편은 경상도 단성으로 유배되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생활 환경 안에서 발생한 신앙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리스도교 신비들과 교의들의 상호 연관을 설명하고 발전시키는 신학 분야. 즉 알아 낸 신앙의 내용(intellectus fidei)의 요구에 따라 계시된 진리의 의미를 궁구(窮究)하며, 전체를 유기적이고 통일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계시 진리들의 상호 관계를 밝히는 학문. 조직 신학이라는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01년 10월 15일 경북 칠곡 한티에서 출생하여 1913년 10월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 1926년 5월 29일 드망즈(F.Demange, 安世華) 주교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아 문경 공평리 본당 주임에 부임하였다. 1928년 6월 신설된 거창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으나 발병하여 부임하지 못하고 대구 중앙
문신. 자는 치양(稚壞), 본관은 풍양(豊壤). 서울에서 조능하(趙能夏)의 아들로 태어나 1859년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주서(注書)를 거쳐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조철증이 천주교 신자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울 재동(齋洞)에 거주하면서 지자익(池子益, 프란치스코) 등 교우들과 교류한 것은 분명하다. 1868년에 체포된 장치선(張致善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군산시 조촌동 836-11 소재. 1988년 1월 19일에 팔마(八馬)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정하상 바오로. 관할 구역은 조촌동 . 구암동 · 내흥동 · 사정동 · 개정동 · 성산면 전 지역과 경장동 · 경암동 · 개정면 · 옥산면 · 회현면 · 나포면 일부 지역. 〔교 세〕 1988년 1,237명, 1996년

1913년(大正 2) 도쿄(東京)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가톨릭 대학. 도쿄 치요다구 키오이초(東京都 千代田區 紀尾井町) 7-1 소재. 〔설립 배경] 일찍이 1549년(天文 18) 일본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던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 Xaverious)는 일본의 수도에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구상을 교황청에 건의하였다. 하지만 박해로 인해 추진되지 못하다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남리 61-1 소재. 1955년 1월 대전(大田, 현 대흥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조치원읍, 금남면, 동면, 서면, 전동면 일대. 〔교 세] 1955년 700명, 1964년 800명, 1973년 1,104명, 1982년 1,789명, 1991년 3,665명, 2000년

프란치스코회 수사,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건축가. 조콘도 다 베로나(Giocondo da Verona)라고도 하며, 본명은 조반니 다 베로나(Giovanni da Verona)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인근에 있는 베로나에서 1433년경 출생한 조콘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중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당시 가장 존경받는 이탈리아 건축 기술자 중
14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 건축가. 〔생애 및 활동〕 조토는 1267년 피렌체 북부의 베스피냐노(Vespignano)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전기를 쓴 최초의 작가 바사리(G.Vasari, 1511~1574)에 따르면, 총명하고 활달한 성격의 조토는 10세 무렵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와 양들을 돌보면서 눈에 보이는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병의(丙宜). 성인 조윤호(요셉)의 아버지. 1815년 경기도 수원 도마지에서 조 안드레아와 권 율리아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로 부친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동생 조화경(야고보)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충청도 신창 남방재로 이주하였다. 신창에서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친척이나 측근 인물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일. 공적보다는 친족 관계나 개인적 친분에 의거하여 직책을 맡기는 관습. 문벌주의(門閥主義) 또는 친족 정치(親族政治)로도 번역된다. 족벌주의를 뜻하는 라틴어 '네포티스무스' (Nepotismus)는 '조카' 라는 의미의 라틴어 '네포스' (nepos)에서 유래하였다. 교회사에서 족벌주의는 중세와

